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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우리은행, 팔지 말고 사게 하라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7.28 17:49

수정 2015.07.28 22:37

[차장칼럼] 우리은행, 팔지 말고 사게 하라

예전에 '상업상회'라는 과일가게가 있었다. 이 가게에서는 한동안 장사가 순조로웠다. 그러던 중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살림이 어려워진 탓에 과일을 사먹는 사람도 줄었다. 상업상회는 매상이 줄어 빚에 허덕이게 됐다. 정부에 도움을 청했다.

정부는 나랏돈을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인근 과일가게와 통합하라는 요구를 했다. 결국, '상업상회'는 이웃한 '한일상회'와 통합했다. 간판도 '우리상회'로 바꿔달았다.

'우리상회'는 거액의 나랏돈을 빌린 만큼 정부에 소유권을 넘겼다. 정부는 경영정상화를 이유로 가게운영에 대해 '감 놔라 대추 놔라' 시시콜콜 관여했다. 얼마후 우리상회는 상호 연계효과를 노리기 위해 인근에 채소가게, 생선가게, 쌀가게 등 계열가계도 만들어 지주 상회형태로 운영됐다. 그후 정부는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우리상회를 매물로 내놨다. 하지만 덩치가 너무 커진 탓에 우리상회는 팔리지 않았다. 급한대로 우리상회 계열 가게들을 팔아치웠다. 우리상회만 남았다. 정부는 먼저 우리상회의 과일들을 차례로 '상자'째 나눠 팔았다. 그후 가게의 소유권과 함께 '권리금'을 받는 조건으로 일괄 매각을 추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가게 권리금까지 지불하면서 인수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후엔 소유권을 두 덩어리로 나눠서 파는 방식도 시도했다. 역시 실패였다. 그렇게 네번의 실패만 거듭한 채 5년이 흘렀다.

일련의 내용은 우리은행 매각을 빗댄 것이다. 정부는 다섯번째 우리은행 매각을 통한 민영화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 우리은행에 투입한 공적자금 12조8000억원을 회수하기 위해 4차례 지분 매각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공적자금 회수'라는 여론의 압박에 견디다 못한 정부는 우리은행 과점주주들에게 4∼10%씩 지분을 쪼개 파는 형태로 매각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흥행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우리은행 지분을 쪼개 파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손쉬운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맹점이 있다. 인수하는 쪽에선 경영권 없는 소수 지분 인수에 대한 매력이 적다. 파는 쪽에서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기해 온전한 공적자금 회수는 불가능하다.

문제의 핵심은 매도자인 정부의 태도에 있다. 지난 우리은행 매각 과정에서 감지되는 실패요인은 매도자가 너무 매각에만 급급했다는 점이다. 서두르는 쪽이 지는 게 흥정의 원리. 우리은행이라는 물건의 가치를 높이는 작업은 뒷전인 채 팔기에만 집착했던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실제, 올 2·4분기 순이익 전망치는 우리은행이 2240억원이다. 이는 신한금융,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등 경쟁 금융사와 비교해 가장 낮다. 우리은행의 주가도 9000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주가라면 공적자금의 원금 회수는커녕, 이자 회수도 어렵다. 매수자에게 물건의 가치가 높지 않은데, 무작정 제값에 사라는 건 모순이다.

이제라도 모래시계를 뒤집듯, 우리은행의 매수가치를 높여 매수자가 찾아오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끝으로, 홈쇼핑에서 1시간 만에 125억원어치 물건을 팔아치워 기네스북에 오른 쇼호스트 장문정씨가 쓴 '팔지 말고 사게 하라'라는 책의 한 구절을 정부 측에 들려주고 싶다.
"바보는 고객을 유혹하려 하지만, 선수는 고객이 스스로 선택하게 만든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금융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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