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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가업승계 태종한테 배워라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03 17:00

수정 2015.08.03 17:00

면밀한 승계전략 세워 오명은 자신이 받고 영광은 아들 세종에게 물려줘

[곽인찬 칼럼] 가업승계 태종한테 배워라


중국 춘추시대엔 왕자의 난이 비일비재했다. 패권국 제(齊)나라 환공도 임금 자리를 놓고 형과 한판 붙었다. 환공은 먼저 왕좌를 차지했으나 노(魯)나라로 도망간 형 규(糾)가 영 마음에 걸렸다. 그는 군대를 동원해 노나라를 압박했다. 잔뜩 겁먹은 노나라는 형을 죽여 제나라로 보냈다. 그때까지 형을 보필한 인물이 바로 관중(管仲)이다.
관중이 절친 포숙아의 추천으로 환공의 심복이 되는 것은 그 뒤의 일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다섯째 아들 방원(태종)을 싫어했다. 방원은 태조 7년(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동생이며 세자인 방석과 후견인 정도전을 살해한다. 정종 2년(1400년)엔 제2차 왕자의 난이 발생한다. 왕위를 노린 넷째 방간이 방원에게 반기를 든 사건이다. 싸움에서 패한 방간은 유배당한다. 명목상의 군주였던 정종은 재위 2년 만에 방원에게 왕위를 넘겨준다. 골육상쟁에 울화통이 터진 이성계는 고향 함흥으로 잠적한다. 태종이 아버지에게 여러 차례 차사(差使)를 보내 문안을 여쭈었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여기서 함흥차사란 고사가 나왔다.

21세기엔 대기업 총수 자리를 놓고 형제 간 격돌이 치열하다. 잊을 만하면 터진다. 이번엔 롯데다. 일본 롯데를 맡은 형과 한국 롯데를 맡은 동생이 세게 붙었다. 그 와중에 오너 가문의 일본식 이름이 공공연히 드러났다. 한국 롯데 직원들은 정체성의 혼란에 빠졌다. 절대군주로 군림하던 창업주 신격호의 권위는 땅으로 떨어졌다.

왜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날까. 승계 절차가 후진적이라 그렇다. 재벌 대기업은 총수 1인이 전권을 휘두르는 구조다. 총수는 종신직이다. 스스로 권한을 내놓지 않는 한 감히 말조차 꺼낼 수 없는 분위기다. 나이 탓에 총기(聰氣)가 흐려져도 제어할 방도가 없다.

1.2차 왕자의 난으로 집권한 태종은 후계자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태종은 장남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위시켰다. 여색을 밝히고 잡기를 즐기는 게 군주감이 아니라고 봤다. 대신 총명한 셋째 충녕(세종)을 후계자로 삼았다. 왕위도 정신이 멀쩡할 때 넘겨주었다. 상왕(上王)이 된 태종은 죽을 때까지 4년 동안 초보 임금 세종의 멘토 역할을 했다. 대마도 정벌을 통해 왜구 다루는 법을 한 수 지도한 게 좋은 예다. 대마도 정벌 때는 병선 227척에 군사 1만7000명을 동원했다. 대형 군사작전이었다. 태종 사후 세종이 태평성대를 연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밑바닥엔 아버지의 면밀한 승계전략이 있었다.

역사학자 이덕일은 태종에 대해 "오명은 자신이 받고 영광은 세종에게 물려준 인물"로 평가한다. "오늘의 영광에 집착해 미래를 망각하는 현재의 정치가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사례"라는 것이다('조선왕을 말하다1'). 오늘의 영광에 집착하는 것이 어디 정치가뿐일까. 21세기 재벌 총수들이 귀담아들을 대목이다.

일찍이 경영의 구루 피터 드러커는 "성공한 최고경영자(CEO)가 치러야 할 마지막 시험은 후계자의 적절한 선택"이라고 갈파했다. 나아가 후계자가 기업을 잘 경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적기에 권한을 위임하라고 조언한다.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를 쓴 짐 콜린스는 경영자 리더십을 다섯 단계로 나눈다. 최상층인 5단계 리더들은 후계자들이 다음 세대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준비한다.

제나라 환공은 어떻게 될까. 관중이 먼저 세상을 뜨자 환공은 총기를 잃고 간신배들과 어울렸다. 그가 죽자 다섯 아들 간에 대판 싸움이 벌어진다. 그 통에 환공의 시신은 염도 하지 못한 채 두 달 넘게 방치된다.
천하를 호령하던 패권국 맹주치고는 고약한 최후가 아닐 수 없다. 권력과 금력 앞에서 인간은 종종 이성을 잃는다.
미리미리 대비하는 게 상책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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