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골프일반

<정대균기자의 한국 골프장 탐방>경기도 용인 아시아나CC

정대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05 10:01

수정 2015.08.05 11:16


▲동코스 10번홀에서 바라본 경기도 용인 아시아나CC 클럽하우스. 1993년에 36홀 회원제로 개장한 이 골프장은 한국 골프장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전화점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코스 10번홀에서 바라본 경기도 용인 아시아나CC 클럽하우스. 1993년에 36홀 회원제로 개장한 이 골프장은 한국 골프장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전화점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용인(경기도)=정대균골프전문기자】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패왕별희로 세계적인 명장 반열에 오른 첸 카이커 감독이 2002년에 만들어 화제가 된 영화 '투게더'를 통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곡이다.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존과 함께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불리는 명곡 중 하나기도 하다. 하지만 이 불후의 명곡도 초연 당시에는 음악에서 악취가 난다는 혹평을 들었다고 한다. 이렇듯 발표 초기 보다는 훗날 제 가치를 인정받은 예술 작품이 있다.


골프장에도 이처럼 개장 초기보다는 연륜이 쌓여 가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곳이 있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아시아나CC(대표이사 박상배)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금호리조트가 운영하는 이 골프장은 1993년에 문을 열어 올해로 개장 22년째를 맞고 있다. 회원제 36홀로 운영되는 이 골프장이 세상에 첫 선을 보였을 때만 해도 많은 골퍼들 사이에서 "마치 공동 묘지 같다"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페어웨이 중간중간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마운드가 멀리서 보면 마치 봉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최고 경영진의 세계에서 가장 어렵고 도전적인 코스를 조성하라는 주문에 따라 세계적인 코스 디자인 회사인 미국 골프 플랜사 소속의 디자이너 로널드 프림에게 코스 디자인을 맡기면서 그것은 이미 예견됐다. 프림의 파격적 디자인은 페어웨이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국내 골프장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언듈레이션을 그린에 주었다. 한 마디로 구길 수 있을 만큼 구겨 놓았다고 보면 된다. 당시 국내 골프장은 페어웨이는 넓고 평탄해야하며 그린은 기껏해야 평지보다 약간 높은 이른바 포대그린으로 난이도를 주는 것이 트렌드였다. 그런데 아시아나CC가 그런 시류에 역행하면서 등장한 것이다. 기존 골프장 업계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이단'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색안경이 걷히기 시작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후 만들어진 많은 골프장들이 어느새 아시아나CC를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페어웨이 마운드와 그린 언듈레이션은 유행병처럼 번져 새롭게 조성되는 골프장들에게는 기본 옵션이 되었다. 한 마디로 아시아나CC의 등장이 한국 골프장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새로운 전환점이 된 것. 오늘날 한국 골프가 세계 최강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아시아나CC로부터 촉발된 골프코스의 '세계화'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흐르면서 초기의 다소 거칠었던 코스의 선(線)은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 버선'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자유롭게 비상하는 곡선으로 변했다. 아시아나CC의 새로운 BI의 모티브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간다. 코스 곳곳에 오밀조밀 심어 놓았던 참나무, 소나무, 잣나무, 자작나무, 그리고 메타세콰이어 등 다양한 조경수들은 22개의 나이테가 더해져 아름드리 거목으로 변했다. 골프장 정문에서 후문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에 식재된 왕벚꽃 나무는 또 어떤가. 봄이면 화사한 꽃터널을 이뤄 상춘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 중의 명소가 되고 있다.

많은 국내 골프장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대대적 리노베이션을 단행한다. 요즘식 표현을 빌리자면 성형미인인 셈이다. 그러나 아시아나CC는 개장 이후 코스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있다. 다시말해 미래지향적 코스 디자인으로 인해 그럴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골프장이 연륜이 쌓이면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서 선 내 누님'과도 같은 완숙미를 물씬 풍기는 '자연미인'에 비유되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흔히들 골프가 인생과 같다고 한다. 희노애락을 모두 느낄 수 있어서다. 그런데 아시아나CC에 들어서면 그것을 더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인생이나 골프나 항상 탄탄대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러는 굴곡도 만나게 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시야가 막힌 도그렉에서는 돌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반대로 시야가 확트인 페어웨이에서는 한방의 모험을 즐길 수 있다. 심한 언듈레이션으로 브레이크가 심해진 그린은 용의주도함이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바로 그러한 것 하나하나가 이 골프장에 흠뻑 빠져들게 하는 매력인 것이다.

코스는 신이 창조한 자연을 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하는 것이라는 디자이너의 철학에 철저히 입각해 설계되었다. 개인적으로 도전욕을 자극하는 동코스는 거리와 폭이 짧은 반면 웅장하고 변화무쌍해 남성적 매력을 지닌 코스다. 그린의 언듈레이션이 서코스에 비해 심하다. 반면 서코스는 섬세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드라마틱한 흥미와 아기자기함이 특징이다. 동코스에서 남자대회인 한국프로골프(KPGA)코리안투어 금호아시아나오픈을, 서코스에서 매일우유 여자오픈 등 다수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대회를 개최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제아무리 하드웨어가 좋더라도 그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아시아나CC는 다른 골프장과 차별화된 서비스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다름 아닌 서비스의 세분화다. 서비스를 시스템적, 인적, 시설적 서비스 등 크게 3가지로 나눈다. 그런 다음 최상의 코스 품질관리, 에이스 시스템 운영(회원간 부킹 조인), 회원 익히기, 로비 매니저 운영, 개인 카트 관리제 시행, 시설물에 대한 일일 사전 점검 등 구체적 매뉴얼을 정해 실천하고 있다.
마치 보잉 747의 1등석에 앉아 있다는 착각이 들게하는 고품격의 성채와 같은 클럽 하우스에서 느끼는 여유는 이런 서비스가 뒷받침 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거기에 맛 좋기로 소문난 음식까지 곁들이면 눈 뿐만 아니라 입까지 호강하게 된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그러하듯 아시아나CC가 생각하면 할수록, 찾으면 찾을수록 말 그대로 죽여주는 '예술 작품'이 되는 이유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