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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의 소비자경제] 대기업의 경영권 분쟁을 보며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06 17:03

수정 2015.08.06 17:03

[이성구의 소비자경제] 대기업의 경영권 분쟁을 보며

경영권 다툼을 나쁜 것처럼 보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주식시장에서 경영권 다툼의 승부는 최종적으로 주주들에 의해 결정되고 이상적이라면 주주들은 주가를 가장 높이 올려줄 경영을 잘할 사람의 손을 들어 줄 것이다. 마치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값싸고 좋은 상품을 구매력으로 투표하듯이 주식시장에서도 투자자(주식 보유자)들이 의결권 행사를 통해 가장 경영을 잘할 사람을 선택하는 것인데, 이 과정이 경영권 분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재벌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대부분 고속 성장과 대물림 과정에서 적은 주식으로 거대한 자산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계열사 간 출자를 통해 형성한 기업지배구조 문제에서 출발한다. 공정위가 발표한 대기업집단 전체 주식 중 재벌 일가 지분은 대부분 5%를 넘지 못한다. 자본금 기준이므로 이들이 보유한 중핵회사 주식의 실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 문제가 있지만 재벌 일가는 지분에 비해 훨씬 큰 권한을 행사하며 주식가치 극대화보다 경영권 확대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어, 경영권 분쟁 요인이 더욱 커졌고 이런 경향은 경영권 자체로 얻을 수 있는 부수적 이익이 큰 경제사회 구조에도 기인한다.
롯데그룹의 경영권 다툼을 보면 정작 다수 주주들은 별 말이 없는데, 집안 싸움에서 시작해 이제 계열사 사장들까지 나선 형국이다. 최종적으로 소액주주들까지 끼어들지 모르지만 롯데그룹은 실제 투자 없이 의결권만 창출한 순환출자 등을 포함해 계열사 지분이 60%에 달하고 있어, 일반 주주들은 실제로는 더 많은 금액을 투자했음에도 그 영향력이 미미하다.

공정위는 롯데그룹의 주식 소유 현황 파악이 미흡한 점에 대해 롯데의 경우 외국회사를 통해 국내 회사를 지배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국외에서 이루어진 행위라도 국내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적용한다"는 공정거래법 제2조의 2 규정에 비추어 개방경제하의 대기업집단 규제에 대한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 하지만 관련 정보를 공개해 투자자가 판단하게 하거나 불법행위를 감시하는 것 외에 기업 경영권 다툼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대주주인 미국계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반대가 문제가 되었다. 제일모직 지분이 많은 삼성 일가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 삼성물산은 물론 삼성물산이 출자한 다른 계열사(삼성전자)의 지배권도 확립하려 한 것인데, 삼성일가의 안정적 지배가 삼성그룹이나 국민경제에 바람직할 수도 있지만 그 판단은 주주들의 몫이다.
삼성물산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 것이 올바른 판단이라 하더라도, 공적자금이 사기업의 지배구조나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것은 시장경제에 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나아가 경영권 보호를 위해 황금주나 차등의결권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주식을 공개하기 전에 미리 알리지 않고 사후적으로 그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다른 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투자자를 속여 재산적 이익을 취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소비자주권의 확립이 시장경제 발전의 출발점이듯 투자자 권리를 찾는 것이 주식시장, 나아가 자본시장 발전의 기초이다.

yisg@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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