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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영 칼럼] 암보다 무서운 자영업

황상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11 17:11

수정 2015.08.11 17:31

[염주영 칼럼] 암보다 무서운 자영업

정년을 맞았거나 명예퇴직을 한 사람이 주위에 많다. 그들이 가끔 자영업을 하겠다며 조언을 구해오면 나는 한사코 말리는 편이다. 자영업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겠지만 실패한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폐업한 영세자영업자가 올 상반기에만 10만7000명에 달했다. 매달 1만8000명꼴로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고 있는 셈이다. 도소매나 음식숙박업 등 부가가치가 낮은 업종 종사자가 많다.
지난 수년간 경기가 좋지 못했던 데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의 충격으로 소비가 격감해 직격탄을 맞았다. 자금력도 달리고 경영노하우도 부족해 맥없이 쓰러졌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까지 더해져 올 하반기에는 이들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영세자영업은 고용원이 없다. 혼자 하거나 월급 안 받고 일하는 가족과 함께 한다. 살아남으려면 인건비를 한 푼이라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영세자영업에서 폐업이 속출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반 자영업자(고용원 있는 자영업)는 같은 기간에 6만5000명이나 늘었다. 자영업이 전체적으로 어렵지만 그 안에서도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급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과잉진입 때문이다. 경제 규모나 인구에 비해 자영업 종사사가 너무 많다. 한국은 국민총생산(GDP) 대비 사업체 수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우리와 GDP 규모가 비슷한 캐나다에 비해 사업체 수가 6배나 된다. 자영업자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 자영업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4%나 된다. 취업자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자영업자다. 미국(6.6%)의 4배 수준이다. 그만큼 생존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시장조사와 직업훈련 등 치밀한 사전 준비 없이 창업에 나서는 것도 폐업을 양산하는 원인 중 하나다. 영세자영업자 중에는 직장에서 정년을 맞거나 명예퇴직을 하고 나온 사람이 허다하다. 해당 분야에 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적은 자본으로 시작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자영업에 뛰어든다. 생계 유지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하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퇴직금과 은행 대출금을 몽땅 날리고 낙오자가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자영업은 40~50대 퇴직자의 무덤이 되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생계형 자영업을 창업해 1년 후 생존하는 비율이 83.8%로 조사됐다. 3년 후에는 이 비율이 40.5%, 5년 후에는 29.6%로 뚝 떨어진다. 창업 후 5년이 지나면 자영업자 10명 중 겨우 3명만 살아남는다.

국가암정보센터가 집계한 한국인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은 68% 정도다. 간암.폐암.췌장암 등은 아직도 10~20%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는 암환자 세 명 중 두 명은 5년 이상 생존한다. 5년 생존율을 비교하면 영세자영업자는 암환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암보다 무서운 것이 자영업이란 말이 우스갯소리인 것만은 아니다.

생계 유지를 위해 자영업에 뛰어드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다. 그렇다고 자영업에 대한 과잉진입을 방치하면 민생안정을 해치고 경제불안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자영업의 구조조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폐업이 늘어나는 것이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최소한 빈총 메고 전쟁터에 나가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자영업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창업지원 교육시스템을 보강하는 것이 시급하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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