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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공룡 닮아가는 노조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12 17:01

수정 2015.08.12 17:01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자발적인 노조 개혁운동은 과연 불가능한 걸까

[곽인찬 칼럼] 공룡 닮아가는 노조

임금피크제가 미뤄진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지난 2013년 4월 국회는 정년연장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대기업은 2016년, 중소기업은 2017년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됐다. 이 법은 50대를 위한 선물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막강 파워를 과시했다. 베이비부머들은 총 714만명, 인구의 14%를 차지한다.
정치인들은 표에 민감하다. 국회는 여야 합의 아래 서둘러 정년연장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보완책은 빠트렸다. 정년이 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진다. 부담을 줄이려면 조기 명예퇴직을 늘리거나 신규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보완책은 임금피크제다. 당시 재계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법으로 명시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를 외면했다. 그 대신 여야는 "정년을 연장하는 기업은 노사 간에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절충안을 삽입했다.

이건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이다. 며칠 전 현대차그룹은 전 계열사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현대차 노조가 들고 일어났다. 현대차그룹도 밀어붙일 뜻은 없어 보인다. "계열사별로 노조와 적용 범위, 방식을 놓고 협의를 시작하겠다"는 게 회사 측 입장이다.

정부.여당은 올 하반기 최대 국정과제로 노동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면서 임금피크제가 마치 청년 고용절벽을 해소할 특효약이라도 되는 양 선전한다. 이건 좀 낯간지럽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건 정부.여당 탓이 크다. 애초 정년연장법을 통과시킬 때 보완책을 빼먹었기 때문이다. 야당의 반대를 핑계로 대는 건 그야말로 핑계에 불과하다. 노동개혁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정부.여당부터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제학 개념 중에 구성의 오류라는 게 있다. 개인한테 좋은 게 반드시 조직에도 좋은 건 아니라는 얘기다. 절약의 역설이 좋은 예다. 모두 돈을 아끼면 소비가 꺼진다. 소비가 꺼지면 경제가 가라앉는다. 결국 그 피해는 조직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간다. 노조도 마찬가지 아닐까. 개별 노조가 제 이익만 챙길수록 국가경제는 멍이 든다. 결국 그 피해는 노조에 돌아간다.

노조는 이익단체다. 이들에게 기득권을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스스로 깨우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노조는 200여년 전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장시간 근로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에게 노조는 훌륭한 방패 역할을 했다. 찰리 채플린은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한낱 조립기계로 전락한 노동자들의 슬픈 현실을 실감나게 그렸다.

하지만 기계의 시대는 갔다. 그 대신 디지털 시대가 왔다. 디지털 시대엔 혁신만이 살길이다. 혁신은 유연성에서 출발한다. 세계 최대의 정보기술(IT) 업체인 구글은 최근 본체인 구글을 여러 개의 자회사로 쪼개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드론사업도 본체에서 분리됐다. '벤처 공룡'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첨단기술 산업은 적당히 머무르는 것에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가 '계속 갈망하고 바보가 돼라'(Stay hungry, stay foolish)고 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카카오택시가 콜택시 시장의 생태계를 바꿔놓았다. 카카오대리운전이 등장하면 또 한 차례 태풍이 예상된다. 디지털 혁신은 거부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차를 자동차가 대체한 것처럼 자동차를 대체하는 전혀 새로운 이동수단의 등장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국 노조는 변신을 거부하는 '노조 공룡'이 됐다.
여론과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궁금하면 현대차 노조가 임금피크제에 반대한다는 포털 기사의 댓글을 보라. 노조를 욕하는 글로 가득하다.
자발적인 노조 개혁운동은 과연 불가능한 걸까. 진화를 멈춘, 박제된 공룡이 되기 전에 말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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