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암살과 베테랑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16 17:02

수정 2015.08.20 13:25

[데스크 칼럼] 암살과 베테랑

지난 14일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생긴 황금연휴에 연이어 두 편의 영화를 봤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암살'과 10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베테랑'이다. 요즘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다 보면 '암살'과 '베테랑' 중 어떤 영화를 보면 좋겠냐는 질문이 많다. 누구는 '암살'을, 또 누구는 '베테랑'을 추천한다. 추천의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두 편의 영화를 모두 보라고 권하고 싶다. 두 영화는 내용과 형식 측면에서 전혀 다른 영화인 데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재미있기 때문이다.


먼저 본 영화는 '암살'이다. 1930년대 경성의 모습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것만으로도 두 눈이 호강을 하는데, 거기에 흥미진진한 독립군 이야기와 화끈한 액션이 있으니 시원한 극장 안 관객들은 시종일관 함박웃음이다.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속사포 등 여러 등장인물 중 가장 영화적인 캐릭터는 하와이 피스톨 역의 하정우와 그의 짝패인 영감 역의 오달수다. 청부살인업자인 그들이 한 방의 총탄으로 목표물을 쓰러뜨리거나 느닷없이 기관단총을 갈겨대며 영화 속 공간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때 관객들은 묘한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이라는 시공간에서 가장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그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암살'은 한 시대를 다룬 역사물이 아니라 이를 하나의 장치로 활용한 훌륭한 오락영화가 된다. 광복 70주년과 맞물린 개봉시점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은 '암살'을 역사드라마로 읽어내려는 경향을 보이지만, 내가 보기엔 서부활극을 방불케하는 액션과 첩보물을 보는 듯한 긴장감, 그리고 매우 약하게 그려지긴 하지만 안옥윤과 하와이 피스톨의 멜로 코드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면 '암살'은 지금과 같은 상업적 성과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에 비하면 '베테랑'은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는 시간차에서 오는 직접성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암살'이 총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베테랑'은 맨몸으로 하는 액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베테랑'은 몇 가지 현실 속 실제사건을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지난 2010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맷값 폭행 사건'과 모 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 재벌 2~3세들이 연루된 대마초 파문 등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터진 모 제약회사 회장 아들의 주차장 행패가 1000만을 향해 돌진하는 영화의 흥행세에 기름을 붓고 있다.

현실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이 이제 막 잡아올린 물고기처럼 펄떡펄떡 뛴다는 사실은 이번 영화의 최대 장점이다. 영화 속 이야기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완벽하게 구축된 캐릭터 때문인 듯한데, 정의의 사자(使者) 같은 황정민도 황정민이지만 최고의 악역 연기를 보여준 유아인의 공이 크다. 그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관객은 진저리를 치고, 선과 악의 대결과도 같은 명동 한복판에서의 싸움에서 황정민이 유아인을 때려눕힐 땐 쾌재를 부른다.


나는 이번 영화들을 중학생 아들과 함께 봤는데, '베테랑'을 볼 땐 어린 아들과 동행한 것을 살짝 후회했다. 아직 어린 아들에게 이 사회의 그늘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해 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구타당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어린 아들이 TV뉴스를 통해서나마 정의가 승리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건 천만다행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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