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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친일에 대한 평가 계속돼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17 17:01

수정 2015.08.17 17:01

[fn논단] 친일에 대한 평가 계속돼야

1930년대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독립군과 변절자 그리고 살인청부업자의 엇갈린 운명을 그린 영화 '암살'이 광복절 전후로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 영화에서 변절한 밀정 염동진(이정재 분)의 실제 인물에 대해서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관동군 헌병대에 붙잡혀 이후 밀정 노릇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염석진이라는 말도 있지만, 영화 속 총독 암살계획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재판 장면을 보면 오히려 '고문왕'으로 불리던 친일경찰 김태석의 모습과 더 닮아 있다. 김태석은 조선 신임 총독 사이토를 암살하기 위해 의거한 강우규 의사를 검거하는 등 밀정을 적극 이용, 독립운동가들을 분열케 하고 체포된 양심수들에게 온갖 잔인한 고문을 가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영화 암살에서 염동진이 자신도 독립운동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고 자기 변명을 하듯 김태석은 반민특위에서 삼일운동 당시 자신의 집에서도 만세를 불렀다고 강변하면서 자신의 고문 사실을 증언하는 증인을 정신병자로 몰아세웠다. 반민특위 재판에 세워진 많은 친일 경찰은 공소사실을 아예 부인하거나 자신들의 활동이 공산주의자를 색출하기 위한, 민족을 위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최남선,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대표됐던 인물로 한국 근대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무정'과 같은 소설을 썼으나 후에 변절하여 창씨개명과 황국신민화를 주창한 이광수는 반민특위에서 다음과 같은 자기합리화성 최종변론을 했다.


"우리 국민은 문맹자도 많고, 경제자립도 어려워 일본과 싸워 이길 힘이 없습니다. 나는 민족을 위해 친일했소. 내가 걸은 길이 정경대로(正經大路)는 아니오마는 그런 길을 걸어 민족을 위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오."

반면 삼일운동에 참여해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친일 인사로 변절한 최린은 자신의 친일행각을 시인하고 재판장과 방청객 앞에서 "민족 대표에 한 사람으로 잠시 민족 독립에 몸담았던 내가 이곳에 와서 반민족 행위를 재판을 받는 그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광화문 네거리에 사지를 소에 묶고 형을 집행해 달라. 그래서 민족에 본보기로 보여야 한다"며 솔직한 참회를 보였다.

당시 위와 같은 반성을 보인 자들은 극히 드물었으며 이는 광복 70년이 지난 현재도 마찬가지다. 최근 홍영표 의원은 "부끄러움을 아는 후손, 용서를 구하는 후손으로 사는 것이 그나마 죄를 갚는 길"이라며 자신의 조부의 친일행적에 대해 사죄했다.
이에 대해서 홍 의원이 내년 총선에서 조부의 친일 문제가 다시금 제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수를 친 것이라고 딴죽을 거는 이들도 있지만 반성은커녕 민족을 위한 길이었다는 궤변보다는 낫다. 처벌이 미완에 그쳤기에 더더욱 그들에 대한 냉엄한 평가와 참회는 계속돼야 한다.
6000리를 걸어서 광복군에 들어가지는 못할망정 혈서까지 써가며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에 들어가는 이는 다시는 생겨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우 법무법인 중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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