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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사면초가 한국 제조업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17 17:01

수정 2015.08.17 17:01

美·日·獨은 '르네상스' 구가
우리만 경쟁력 약화로 위기 구조조정과 혁신만이 해법

[이재훈 칼럼] 사면초가 한국 제조업

광복 70주년을 맞은 시점에 한국 제조업의 위기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세계 최빈국이던 한국을 그 짧은 세월에 10대 경제대국으로 환골탈태시킨 주역이 제조업 아니던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그 제조업이 휘청거리고 있다. 조선.자동차.전자.철강.석유화학 등 우리 주력산업의 올 2.4분기 실적은 '쇼크' 일색이었다. 근본적인 경쟁력 약화가 제조업 위기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세계 선두라는 현대.대우.삼성 등 3대 조선업체가 2.4분기에만 5조원 가까운 적자를 내며 침몰 직전 상태에 몰렸다. 현대.기아차도 중국 판매 부진 등의 영향으로 상반기 영업이익이 19%나 줄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중국 업체들에 밀려 고전 중이다. LG전자는 2.4분기 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0%나 감소한 최악의 실적을 발표했다. 포스코는 얼마 전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다. 추락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짐작조차 어렵다. 2.4분기 제조업 실질성장률은 0.4%에 그쳤다.

제조업 위기에 대한 경고는 몇 년 전부터 있었다. '샌드위치론' '넛크래커 위기론' '산업절벽' 같은 것이다. 일본과의 기술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가격경쟁력으로 무장한 중국의 추격이 거센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요즘 한국 상황은 엔저로 가격경쟁력을 회복한 일본과 우리의 기술 수준을 따라잡은 중국 사이에서 '역(逆)넛크래커 위기'에 봉착했다고 규정하기도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목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분석한 결과 철강.석유화학.자동차.조선.스마트폰 등에서 이미 중국에 추월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디스플레이는 그다음 차례로 꼽힌다.

시름시름 앓던 일본 기업들은 아베노믹스와 엔저 이후 경쟁력을 회복했다. 도요타자동차의 2.4분기 순이익은 6500억엔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니의 이 기간 순이익은 207% 늘어난 824억엔을 나타냈다. 더 무서운 건 일본 기업들이 실적호전 이후 연구개발(R&D)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조사 결과 일본 주요 기업의 41%가 올해 연구개발비를 사상 최대 규모로 늘릴 계획임을 밝혔다고 한다. 미래에 대한 투자는 엄두를 못 내고 유보금만 차곡차곡 쌓고 있는 한국 대기업과 대조된다.

한국은 일본.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만이 아니다. 두 나라를 포함해 미국.독일 등 세계 주요국들이 일제히 '제조업 르네상스'를 구가하고 있는 가운데 나 홀로 왕따 신세가 됐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잘나가는 미국이 제조업 강국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중국 기업이 공장을 미국으로 속속 이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동집약적 산업인 중국 섬유업체들이 싼 부지 값, 물류비와 보조금, 세금 혜택 때문에 미국 동부지역으로 옮겨간다는 소식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올 상반기 중국 기업의 대미 직접투자가 64억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추진해온 제조업 활성화 정책, 즉 '메이드 인 USA' 정책이 결실을 보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제조업 혁신에 박차를 가하는 '신행정 행동계획'을 발표했고, 독일은 올 4월 제조업 육성정책인 '인더스트리 4.0'의 추진 주체를 정부로 바꿨다. 중국은 2025년 제조업 2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수립했고, 일본도 미래투자 및 생산성 혁명 계획을 담은 '일본 재흥전략 개정 2015'를 내놓았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제조업 혁신 3.0' 전략은 별 임팩트가 없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 제조업이 강한 나라만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그리스 사태가 보여줬다. 한국 제조업은 시장 선도업체를 추격하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 이만큼 성장했다.
그러나 이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혁신 그리고 기업가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도 노동개혁 등을 통해 걸림돌을 제거해줘야 한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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