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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대부업 금리와 베니스의 상인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18 17:45

수정 2015.08.18 22:47

[차장칼럼] 대부업 금리와 베니스의 상인

수년 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에 들어갈 때 가장 기대했던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였다. 박물관을 나올 때 기억에 남는 그림은 '고리대금업자와 그의 아내'이다. 이 그림은 귀족이 아닌 고리대금업자가 주인공이다. 그림 속에는 고리대금업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금화의 무게를 재고 있다. 그 옆에선 부인이 종교서적을 읽다가 남편을 바라보고 있다.
이 그림은 풍자적이고 도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시 고리대금업자는 존경받던 직업이 아니었다. 당시 교회는 이자 수취를 금지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리대금업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다. 성경에도 "이자를 위해 돈을 빌려주지 말고…"라는 구절이 있다. 단테는 '신곡'에서 고리대금업자들을 '지옥 갈 사람'으로 규정했다. 대부는 5000년 전부터 출현했다. BC 3000∼1900년의 수메르에서는 보리 대부의 이자율로 33.33%를 받았다. 13세기 베니스의 경우 5∼8%의 이자를 인정했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은 대표적 고리대금업자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태조 때 설치한 의창과 993년에 설치한 상평창은 본래 취지와 달리 고리대기관으로 변질됐다. 조선시대의 경우 러시아 대장성이 1905년 간행한 '한국지'에는 10개월에 5∼10할의 고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뿌리 깊은 고리대는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음지'에 있던 고리대금업을 '양지'로 끌어내기 위해 지난 2007년 '대부업'이란 정식 금융업종을 만들었다. 고리대금업자가 대부업 등록을 하면 일정 수준의 금리를 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했다. 대부업 최고 금리는 지난 2007년 66%를 시작으로 2010년 44%, 2011년 39%, 2014년 34.9% 등으로 점차 낮춰왔다.

정부는 올 6월에도 서민금융 지원 강화 차원에서 대부업 최고금리를 29.9%로 낮추는 방안을 발표했다. 여당도 같은 내용에 공조했다. 그러나 야당은 한술 더 떠 대부업 최고금리를 25%까지 낮추자는 법안을 내놨다. 일리 있는 법 개정이다. 국내 대부업 이용자 270만명이 대부분 살림살이가 팍팍한 서민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하폭이 쟁점이다. 돈을 빌리는 서민 입장에서 대부 금리는 낮을수록 좋다. 그러나 대부업계는 최고금리 인하로 수익성이 나빠질 경우 대출조건을 강화할 게 뻔하다. 결국 신용등급이 9∼10등급인 저신용자들이 대부업 문턱을 넘지 못해 불법사금융 시장으로 쫓겨날 수 있다. 정부도 대부업계 최고금리를 종전 34.9%에서 29.9%로 5%포인트 낮추면 최대 30만명의 저신용자가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만일 대부업 최고금리를 종전 34.9%에서 25%로 10%포인트 낮출 경우 불법사금융으로 몰리는 저신용자는 훨씬 늘어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악덕 고리대금업자로 인식된 대부업은 일부 서민금융 울타리로서의 역할도 해왔다. 당장 생존 위험에 처한 저소득·저신용자가 불법사금융에 내몰리지 않으면서도 전체 대부업 이용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금리인하가 필요하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살은 베어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통해 주인공 안토니오를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으로부터 구해낸 포샤의 지혜를 정부와 국회에 기대해본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금융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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