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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칼럼] 에코세대 수난시대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19 17:03

수정 2015.08.19 17:03

'포기자' 낙인도 서러운데 취업난에 생활고까지 첩첩산중
청년층 맞춤형 대책 나와야

[정훈식 칼럼] 에코세대 수난시대

맹자는 "스스로를 해치는 자와는 함께 말을 나눌 수 없고 스스로를 버리는 자와는 함께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스스로 해치는 자를 자포(自暴)로, 스스로를 버리는 자를 자기(自棄)라고 규정했다. '절망에 빠져 스스로를 포기하고 내팽개친다'는 뜻의 자포자기는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심하게 말하면 자포자기한 사람과는 상종을 말라는 것이다.

맹자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요즘 젊은 세대, 특히 30대 초중반의 이른바 에코세대에는 포기라는 말이 너무 쉽게 회자되니 말이다.
삼포, 오포, 칠포가 그것이다. 포기는 원래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둔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자포자기와도 맥을 같이한다.

에코세대의 수난시대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자녀세대(1979∼1985년생)인 에코세대는 메아리(에코)처럼 전쟁 후의 대량출산이라는 사회현상이 20여년이 흘러 2세들의 출생붐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졌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기에 태어나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시기에 글로벌 경제위기와 저성장이 불러온 사상 초유의 취업난으로 사회진출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경제난과 취업난에 변변한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다보니 주머니 사정이 좋을 리 없다. 그러니 삶의 필수과정을 하나둘 단념할 수밖에. 당장 연애를 할 여유가 없고 이것이 결혼과 출산 포기로 이어진다. '삼포'다. 여기에 집을 포기(사포)하고 인간관계마저 끊는다(오포). 인간관계 단절은 절망으로 이어져 꿈과 희망마저 접게 한다(칠포).

에코세대의 비애는 각종 통계에 절절히 묻어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 적령기인 25∼34세의 연애비율은 평균 30%가량이다. 남녀 모두 10명 중 3명만 연애를 한다는 얘기다. 남성은 33%, 여성은 35%가량이 연애를 한다. 에코세대(30∼34세)는 그 이후 세대(25∼29세)보다 연애비율이 5%포인트 이상 낮다.

에코세대의 고단한 삶은 진행형이다. 극심한 취업난을 뚫고 재수, 삼수, 오수 끝에 간신히 사회에 첫걸음을 내디뎌도 장기실업 탓에 이미 빚더미를 짊어진 상황에서 월급은 쥐꼬리니 빈곤의 악순환이다. 박봉에다 치솟는 집값으로 또다시 생활고를 겪는다. 지난달 기준 전국 아파트 값은 평균 3억원에 육박하고 서울은 5억원을 훌쩍 넘었다. 전셋값도 몇 년째 고공행진이다. 하지만 소득은 제자리다. 작년 기준 가구주가 39세 이하인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33만원이다. 전년보다 고작 0.7% 오르는 데 그쳤다. 통계가 시작된 2003년 이후 상승폭이 가장 작다. 벌어들인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 넘게 모아야 서울의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셈이다. 에코세대에게 내 집 장만은 언감생심이다. 그러니 90%가 셋집을 전전한다.

이들은 앞으로도 얼마나 더 인생의 필수코스를 단념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삶까지 포기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이런 지경에 이르기 전에 당국은 에코세대의 고충을 낱낱이 파악하고 원인별 처방을 담은 맞춤형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때마침 정부와 대기업을 중심으로 청년고용에 앞다퉈 나서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여기에 더해 주거와 생활안정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공공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고 국민주택기금 등 정책자금의 대출 문턱도 더욱 낮춰야 한다. 정부는 제대로 된 처방으로 에코세대에게 붙은 '포기자' 딱지를 떼어줘야 한다.
그러면 맹자가 우리 젊은이들을 보는 눈도 달라질 것이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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