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fn논단] 차별없는 사랑을 실천했던 묵자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19 17:03

수정 2015.08.19 17:03

[fn논단] 차별없는 사랑을 실천했던 묵자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예수가 태어나기 400여년 전, 중국의 한 사상가는 이렇게 설파했다. 춘추전국시대, 계속된 전란과 위정자의 폭정으로 백성들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민초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며 이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자 했던 묵자(墨子)는 대중의 열렬한 주목을 받았다. 한비자는 "오늘날 이름 높은 학파는 유가와 묵가다"라고 했고, 맹자도 "양주와 묵적의 소리가 천하에 가득하다"고 했다. 묵적이란 이름을 가진 묵자는 전국시대 초기 공자와 맹자 사이의 시기에 활동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도 해박했고 밑바닥 서민의 정서도 잘 이해한 점을 볼 때 그는 천민계층인 공인 출신 사상가로 추정된다.
또 사상을 실천하고 전파하는 데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을 펼친 점도 특이하다.

묵자의 핵심 사상은 차별 없는 사랑(兼愛), 전쟁 없는 평화(非攻), 절약을 통한 부의 분배(節用) 등이다. 묵자는 먼저 세상이 혼란한 원인을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강자는 약자를 억누르고, 부자는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며, 지체 높은 자는 미천한 자를 경시하고, 약삭빠른 자는 어리석은 자를 기만하게 된다.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그는 '널리 사랑하는 겸애(兼愛)와 서로 이롭게 하는 교리(交利)'를 제안했다. "남의 나라 보기를 제 나라 보듯 하고 남의 집안 보기를 제 집안 보듯 하며 남의 몸 보기를 제 몸 돌보듯 한다"면 모든 분란은 없어질 것이다. 또 사랑은 차별이 없어야 하며 이를 실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과 이익을 나누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를 위해 굶주린 자에게는 먹을 것을, 추운 자에게는 옷을, 노동이나 병역에 지친 자에게는 휴식을 주자고 했다.

묵자는 부를 늘리며 나눔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절용(節用)을 제안했다. 남의 나라를 침범하고 남의 재산을 탐하기보다는 절약으로 부를 축적하고 이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그는 동조자들에게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자신을 이롭게 하는 길'이라고 독려했다. 묵자 추종자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주고 허름한 옷에 낡은 신을 신고 궁핍하게 지내는 고행을 서슴지 않았다. 또 재능과 노동력을 가진 자는 침략 위기에 놓인 약소국을 돕기 위해 무기를 만들고 성곽과 진지를 구축하여 방위를 도왔다.

묵가의 무리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이었다. 전문 분야별로 책과 문헌에 밝은 설서(說書), 수공업과 군사 기술을 익혀 몸으로 봉사하는 종사(從事), 사상 전파를 위한 논증과 언변에 능통한 담변(談辯) 등으로 역할을 나누었다. 또 묵가의 추종자들은 사상 무장이 투철하여 조직에 대한 충성도도 높았다. '여씨춘추' 기록에 의하면 양성군을 도와 초나라와 항전하다가 성이 함락되자, 묵자의 무리 183명은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성 위에 누워 집단 자살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묵자의 사상은 전국시대가 끝나고 진나라가 통일을 이루자, 바람처럼 사라졌다.
오랜 기간 잊혀진 묵자가 재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마르크스의 사상이 중국에 소개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이마저 평화를 주장한 묵자의 사상이 계급투쟁론과 배치되었던 까닭에 공산주의자들로부터도 외면을 받는다.
차별 없는 사랑으로 평등의 가치를 구현하려고 헌신한 묵자의 추종자들은 왜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많은 의문을 남겼다.

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