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

유로 실험, 이제 끝내자

유럽통화동맹(EMU)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통화동맹은 그 자체로 거대한 바나나 껍질이라는 게 드러났다. 자본 이동은 유럽 주변부의 비용을 끌어올렸고, 통화 평가절하는 선택 가능한 대안이 아니었다.

'사실상 기존 EMU'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값비싼 실패라는 점은 최근 수년간 분명해졌다. 유럽 기구들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고, 유로만이 아니라 유럽 프로젝트 전반에 대한 정당들의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심지어 애초부터 EMU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이들조차 이 실패한 실험을 끝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고 말하기를 꺼리고 있다.

배리 에이켄그린의 유명한 말처럼 EMU 해체 전망은 '모든 금융위기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 이 말에 반대하기는 어렵다. 바로 이 때문에 거의 모든 학파의 경제학자들이 공동통화 도입을 지지하건 안 하건 간에 지난 5년간 유로존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구조조정과 정책변화 수단을 만들어내고 전파해왔다.

단기적으로 유로존은 훨씬 더 느슨한 통화·재정정책이 필요하다. 또 더 높은 물가상승률(인플레이션) 목표(명목임금·물가 하락을 막기 위한), 적절한 수준의 부채 감축, 적절하고 중앙화된 재정의 뒷받침이 있는 적절한 은행동맹이 필요하다. 또 각국 은행들이 보유할 수 있는 '안전한' 유로 자산을 통해 정부와 은행 간에 놓여 있는 치명적 맹점을 제거해야 한다.

불행히도 경제학자들은 적절한 재정동맹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아왔다. 경제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이들조차 자기검열에 나섰다.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침묵이 그같은 정치적 가능성을 더 희박하게 만들고, 이 때문에 더 온건한 제안들은 고려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데 있다.

5년이 지났지만 유로존에는 여전히 적절한 은행동맹이 없고, 그리스에서 드러나듯 적절한 최후의 구제금융 기구도 없다. 게다가 높은 인플레이션 목표는 생각조차 할 수 없고, 독일 정부는 유로존 안에서는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기순응적인 재정 조정은 여전히 원칙으로 작동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뒤늦은 양적완화(QE)는 진일보한 것으로 환영할 만하지만 회원국 은행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정치적인 의도가 엿보이는 수많은 파괴적인 결정은 상황을 훨씬 더 악화시켰다. 그리고 그 누구도 현 상태로는 EMU가 살아남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재정·정치 동맹을 언급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런 가운데 정치적 손상은 지속되고 있다. 반유럽 정당들 모두는 그리스 집권 시리자만큼 유럽 지향적이지 않다. 또 회원국 내 정치상황은 왜곡돼 있다. 중도파가 유로존 경제정책과 민주주의의 부채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 무능한 탓이다.

프랑스에서는 사회주의자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가 '공급은 수요를 창출한다'는 장 밥티스트 세이를, 극우 국민전선의 마랭 그펜은 폴 크루그먼과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인용한다. 노동계급 유권자들이 국민전선으로 돌아서는 게 전혀 의아하지 않다.

2017년, 또는 2022년 국민전선이 총선에 승리하고 유럽 프로젝트를 파기한다는 가정은 더 이상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로존 소국의 시민들은 독일이 그리스에 대한 목표 달성을 위해 얼마나 포악하게 ECB를 정치화했는지 지켜봤다. 이들이 유로존은 소국에 위험한 '동맹'이라는 결론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도파 정당들이 현 상황에 반기를 들기보다 주변에 계속 머물면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이 고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실패한 유로실험을 끝내고,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말을 주저하는 나 같은 경제학자들로서는 아마도 지금이 유로를 끝내자고 나설 때다.


물론 유로 종식은 상당한 위기를 몰고올 것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100년 뒤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유로가 존재할까. 그렇지 않다면 유로는 끝을 맞을 테고 이를 위한 '적절한' 시기는 결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빨리 끝내는 게 낫다.

케빈 오루크 英 옥스퍼드대 경제학 교수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