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대나무숲과 확성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여이설화'라고도 한다. 삼국유사 경문대왕조에 실려 있다. 경문왕은 왕이 되고 난 뒤 갑자기 귀가 길어져서 나귀 귀처럼 되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으나 오직 왕의 복두장이(왕의 복두를 만들거나 고치는 일을 하던 사람)만은 알고 있었다. 왕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언제나 귀를 덮는 모자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경문왕이 실제로 당나귀 귀를 가졌다기보다는 왕위 계승의 정통 적자가 아니라는 열등감, 즉 정통성에 대한 불안을 상징한 것이 아니었을까. 복두장은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다가 도림사 대나무숲에 들어가 "우리 임금의 귀는 나귀 귀와 같다"고 외쳤다. 그 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가 서로 부딪치며 "임금의 귀는 나귀 귀와 같다"라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왕은 대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수유를 심게 했는데, 그 뒤로는 "우리 임금의 귀는 길다"라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설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도 있다. 소아시아반도(현 터키 일대) 프리지아의 왕 '마이더스' 이야기의 내용과 비슷하다.

휴전선 대북 확성기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빙 돌아왔다. 휴전선은 '도림사'이며, 바람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대숲은 '확성기'인 셈이다. 다만 '임금의 귀는 나귀 귀와 같다'는 내용은 국제사회에서 점차 고립되고 있는 북한의 현실 등으로 구분될지 모른다.

실제로 지난 21일 우리 군이 인천 강화도에서 내보낸 대북 심리전 확성기 방송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 달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기로 공식 발표했다"며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중국만 3번이나 방문했으나 김정은은 3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순방은커녕 외국 관광조차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정은이 해외 순방에 나서지 않은 '사실'을 북한 병사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남한 측의 이 같은 방송이 진실이라고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 측이 대북 방송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대북 확성기를 통한 선전이 의외로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한다. 확성기의 출력이 압도적으로 커 밤에는 20㎞ 밖까지 들릴 정도라고 한다.

그러기에 북한은 확성기에 조준 사격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는 등 폭발시킬 태세다. '여이설화'의 맥락과 연결지어 보면 경문왕의 정통성에 대한 불안처럼 김정은이 확성기를 체제 문제와 관련해 판단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남북 고위급 회담에 나선 북한 측의 태도에서 그런 속내가 읽힌다.
과거 북한은 남북 간의 회담 중에도 민감한 쟁점에 대해 서로 타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즉각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 결렬시킨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당 시간 입장이 평행선을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대북심리전 중단을 관철하라는 김정은의 지침이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쯤 되면 '확성기'가 전략적으로 활용하기에 따라 고도의 대북 억지력(抑止力)을 발휘할 수 있는 '진실 무기'라고 하면 지나치다고 할까.

yoon@fnnews.com 윤정남 정치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