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로스쿨 논란과 선의의 피해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31 17:02

수정 2015.08.31 19:43

고3 시절 "내 인생에 재수는 없다"고 종종 말했지만 재수를 했다. 2008학년도 수능에 처음 도입된 등급제에서 원했던 등급이 나오지 않아서다.

'등급 떨어진 자, 제도 탓하지 말라. 그럴 거면 많이 맞히지 그랬느냐'는 말을 들을까봐 묵묵히 제도에 순응했다. 등급제는 곧 사라졌고 다음 수능성적표에는 성적등급과 표준점수, 백분위 점수가 함께 표기됐다.

09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하니 이번에는 법학 과목을 들을 수 없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설치하면서 법과대학을 폐지했으니 신입생부터는 전공 과목을 듣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법조인을 꿈꾸는 또래 학생들은 사법시험이냐 로스쿨이냐를 놓고 고민했다. 저학년 때 사시에 올인해 합격한 수재가 아닌 이상 대다수는 로스쿨을 택했다.

그랬던 선배, 동기, 후배들은 요즘 불만이 많다. 법조인을 양성할테니 로스쿨로 가라는 정부 차원의 권유에 따라 로스쿨에 왔더니 이번에는 로스쿨이 음서제라며 없애야 된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는 것이다. '로스쿨생 취업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자신들까지 싸잡아 좋지 않게 보는 눈길도 느껴진다고 했다.

특히 법대를 다니며 사시 준비를 하다가 졸업 후 로스쿨에 진학한 선배들은 "20대 전 기간을 하라는 대로 한 죄밖에 없다"고 말한다. 고시촌에 남아 사법시험을 계속 준비하는 선배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오랜 수험 생활에 학점은 엉망이 됐고 줄어드는 사시 합격 인원과 '아직도 사시 준비해?'라는 주변의 말에 불안해한다.

사시 존치와 로스쿨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 기자는 학교를 떠나 취업을 하고 법조 기자로 1년 하고도 반년을 지냈다. 고등학생 시절 처음 접한 로스쿨 제도가 20대 후반이 돼서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라니 놀라울 뿐이다. 물론 충분한 토론은 필요하다. 하지만 각자 자리에서 목소리만 높아질 뿐 제자리를 맴도는 느낌이다. 국내 변호사들의 수장을 뽑는 선거에서 별다른 대책없이 수년째 '사시 존치'가 주요 공약으로 나온다는 점도 이를 반영한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킨 국회는 어떤가. 최근 한 변호사는 "사시와 로스쿨에 관심 있던 의원실도 좋지 않은 여론에 논의를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법조인이 되고 싶어 택한 길이다.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로스쿨에 입학한 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로스쿨에 입학한 이, 사법시험을 놓지 않고 준비하는 이. 그리고 논쟁은 여전하다. 대체 이들이 무얼 잘못했나.

신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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