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fn논단] 성범죄와 자유주의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31 17:52

수정 2015.08.31 17:52

[fn논단] 성범죄와 자유주의

성폭행범으로 15년형을 살고 있던 죄수 김선용이 최근 병원에서 탈주를 감행했다. 그런데 우리를 더 경악시킨 것은 그가 도주 중에 한 상점에 들어가 또 한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사건은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고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들이 이처럼 극단적인 몇몇 경우를 포함해 점차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간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들이 그러한 사건을 접하는 방식은 거의가 한결같다. 제일 먼저 끔찍함이 클로즈업되고 그래서 대부분 그 사건의 폭력적인 잔혹함과 그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공포와 불안의 구조로 정형화돼 전달된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그러한 끔찍한 범죄 사건들의 원인과 해결에 대한 사려깊은 분석보다는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그 악몽같은 끔찍한 사건으로부터 자꾸 벗어나게 만든다.
왜냐하면 누구나 그 참상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좀 더 사려 깊은 접근은 흥분을 자제하고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가 하는 사건 발생의 책임 소재를 찬찬히 규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 소재의 규명에는 경찰의 대응 미숙이나 행정적 허점 등이 어김없이 지적된다. 차후에 또다시 이런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듯 그때그때의 반응과 처방도 중요하지만 성 범죄의 근원에 자리잡고 있는 사회적 요인이나 근원적인 해법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연구가 먼저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저자 리베카 솔닛은 미국사회에도 성범죄가 엄청나게 발생하고 있다고 고발한다. 그녀에 의하면 배우자나 옛 배우자에 대한 살인이 매년 1000건을 훌쩍 넘고, 9초마다 여자가 구타당하고 강간은 6.2분마다 한 건씩 신고되지만 총발생 건수는 그 다섯 배는 되리라 추정한다. 그는 "폭력에는 인종도 계급도 종교도 국적도 없다. 그러나 젠더는 있다"면서 이 문제의 근원에 가부장제나 강력한 남성성이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테면 차별화된 젠더의 문제 때문에 성범죄가 만연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남존여비라는 오랜 봉건적 관행과 문화 속에 있었던 우리로서도 그러한 차별성에 있어서는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차별성이 심각한 사회적 폭력을 동반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리베카 솔닛도 "폭력은 무엇보다도 일단 권위주의적이다. 폭력은 내게 상대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살인은 그런 권위주의의 극단적 형태다"라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성범죄의 원인으로서 남성들의 권위주의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범죄의 원인이 비단 이 권위주의 하나뿐이겠는가. 성의 상품화에서부터 정신적인 질병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문제는 힘이 있다고 해서 힘이 없는 약자를 무턱대고 괴롭히는 것이 허용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에 있다.
이마누엘 칸트의 말처럼 사람은 목적이지 결코 수단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모든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사람을 점점 하찮게 여기는 오늘날의 인간학대적 현실 속에서 사람 존중의 이 자유주의적 황금률을 그것이 너무 평범하다고 해서 우리가 너무 쉽게 잊고 살아왔던 것은 아닌지 깊게 반성해 볼 일이다.

김진기 건국대 국어국문학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