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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내 차가 전쟁에 동원 된다고요?"

오승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31 17:52

수정 2015.08.31 17:52

[차장칼럼] "내 차가 전쟁에 동원 된다고요?"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항간에 진위 논란이 벌어지는 단골 메뉴가 있다. 비상시 개인 소유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화물차 등 산악·운반용 차량은 군에 징발된다는 것.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이다. 다만 일괄적으로 해당 차량 모두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상대비자원관리법에 따라 '중점관리대상물자 선정 및 임무고지서(이하 임무고지서)'를 받은 경우다.

전쟁 발발 등으로 대통령이 비상사태와 함께 동원령을 선포하면 각 부처에 하달되고 국방부는 차량, 인력 등 필요 물자와 자원을 책정해 국토교통부 등 관련부처에 요청하는 일명 '소요제기'를 하게 된다. 국토교통부는 이를 각 지자체에 하달하고, 대상 차량이 인근 부대에 인계되는 순이다.


임무고지서는 한마디로 국가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국토부는 1년마다 비상시 군에 필요한 차의 종류와 대수를 추산해 각 지자체에 동원물량을 배분하고, 지자체는 일정 조건에 맞는 차량을 선정해 차주에게 임무고지서를 발송하고 있다. 임무기간은 1년이고, 동원령이 선포되면 다음 달 오후 2시까지 인계해야 한다. 선정조건은 △신차 △SUV·화물차 등 다목적형 △차주 주거지 지역 내 군부대 인근 등 크게 3가지다. 신차로 대상을 정한 것은 연식이 오래된 중고차보다 고장 가능성이 낮아서다. 다목적형 차량을 최근 구입한 차주의 주소가 군부대와 가깝다면 선정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셈이다. 실제 지자체들은 3가지 조건을 전산시스템에 입력해 나열된 순서대로 선정한다. 차주가 응하지 않으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지만 지금까지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는 게 담당 공무원의 설명이다. 처벌규정은 전시법령이니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매번 항의전화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많고 많은 차중에 왜 하필 제차예요?" 임무고지서를 받자마자 불만을 쏟아내기도 하고,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니 담당 공무원들도 여간 고역이 아닐 듯싶다. 올해만 해도 1월부터 7월까지 국내시장에서 SUV 24만2159대, 트럭 10만6470대 등 약 35만대가 판매돼 해당 차주들은 운을 탓하며 볼멘소리가 나올 법하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우리의 현실을 망각한 이기주의적 행태다. 우리나라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국이다. 더구나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친 연평해전과 2009년 대청해전,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연평도 포격도발로 장병들이 산화해 갔다. 최근에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일촉즉발의 위기국면까지 치닫는 등 2000년대 이후에도 한반도에는 전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북한의 잦은 도발과 65년 전 6·25는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자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다. 항의하는 차주들은 이를 잊고 있는 게 아닌지 안타깝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 머리말에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고 했고,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왜 하필…"이라는 불만이 아니라 신성한 임무를 맡긴 국가와 공무원의 노고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는 개인의 안보의식, 국가의 미래와도 상통하는 문제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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