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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샴페인 너무 일찍 터뜨린 중국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9.07 17:07

수정 2015.09.07 17:07

덩샤오핑은 50년 동안 美에 맞서지 말라고 당부
후손들은 대놓고 힘자랑
[곽인찬 칼럼] 샴페인 너무 일찍 터뜨린 중국

중국 삼국시대 3웅(雄) 가운데 유비가 제일 약했다. 유비는 조조에게 몸을 의탁한 뒤 식객처럼 빈둥거렸다. 조조는 유비를 떠보기로 했다. 함께 밥을 먹다 조조가 물었다. "이 난세의 영웅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놀란 유비는 이 사람, 저 사람 이름을 대며 몸을 낮췄다. 조조가 급소를 찔렀다.
"이 시대의 영웅은 바로 나와 자네일세." 마침 그때 하늘에서 천둥이 쳤다. 유비는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벌벌 떠는 시늉을 했다. 아녀자 같은 유비의 모습에 조조는 마음을 놓았다. 여기서 도회지계(韜晦之計)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제 본모습을 감추고 상대방을 속이는 계책이다.

중국 근대화의 아버지 덩샤오핑은 유비의 계책이 썩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1970년대 말 개혁.개방을 선언한 덩은 향후 50년 동안 미국에 맞서지 말 것을 당부했다. 덩 시절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외교 기조로 삼았다.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흘렀다. 그새 중국은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바뀔 만큼 변했다. 일본은 진작에 앞질렀고, 구매력을 기준으로 하면 미국도 제쳤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황제' 소리를 듣는다. 전승절 70주년을 맞아 톈안먼 광장에서 인민해방군을 사열하는 그의 모습은 과연 황제다웠다. 중국은 이제 화평굴기(和平屈起)를 넘어 군사굴기로 나아가고 있다.

경제굴기를 향한 집념도 대단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중국은 미국 달러 대신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새로운 기축통화로 쓰자고 제안했다. 달러를 '통화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게 목표다. 쑹훙빙은 베스트셀러 '화폐전쟁'에서 "기축통화의 위상을 확립하는 것은 모든 주권국가가 화폐를 발행하는 최고의 경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중국이 금을 열심히 사모으면 "'포스트 달러' 시대에 위안이 세계 각국이 선호하는 기축통화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요컨대 달러를 위안으로 교체하자는 얘기다.

'기축통화 전쟁의 서막'을 쓴 장틴빈은 미국의 무위도식을 비판한다. "아시아인 다섯 명과 미국인 한 명이 무인도에 갇혔다. 아시아인들은 열심히 사냥했지만 미국인은 가만히 앉아 그들이 해주는 음식을 먹었다. 다 먹은 뒤엔 달러라는 '휴지조각'으로 음식 값을 냈다. 아시아인들은 미국인이 먹고 남은 음식을 먹어야 했다." 반미, 반달러 감정이 물씬 묻어난다.

지하의 덩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후손들이 잘한다며 박수를 치고 있을까, 아니면 후손들이 너무 서두른다고 걱정하고 있을까. 아무래도 후자일 것 같다. 미국 예일대학의 중국계 천즈우 교수는 "중국은 미국을 리더로 삼으라"고 충고한다('중국식 모델은 없다'.2009년). "과거 덩샤오핑이 주장했던 도광양회의 외교방침은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커다란 의미를 준다"는 게 천 교수의 판단이다.

여전히 미국은 천하제일 강국이다. 미국은 130년 넘게 세계최대 경제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국방비는 2~15위국 지출을 다 합친 것보다 많다. 구글.페이스북.아마존.테슬라에서 보듯 첨단기술은 샘솟듯 한다. 전 세계 인재를 자석처럼 끌어들이는 교육경쟁력은 당할 자가 없다.

혹시 중국은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린 건 아닐까. 일본이 그랬다.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의 꿈은 환상이었다. 버블이 터지면서 경제는 폭삭 가라앉았다. 일본은 미국 옆에 찰싹 붙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톈안먼 열병식을 보는 미국의 시각이 거칠다.
워싱턴포스트지는 "군사 열병식은 20세기의 흉물스러운 유산"이라며 "히틀러와 스탈린, 침공과 독재를 연상시킨다"고 비판했다. 이달 말 워싱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긴장감이 감돈다.
덩샤오핑은 50년을 참으라고 했으나 후손들은 힘자랑을 못해 안달이다. 시진핑의 '중국몽(夢)'은 꿈일까, 현실일까.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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