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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음] 단통법 극약처방, 그 다음을 준비해야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9.16 16:42

수정 2015.09.16 16:42

[이구순의 느린 걸음] 단통법 극약처방, 그 다음을 준비해야

부자(附子)라는 한약재가 있다. 독약이다. 옛날 죄인을 독살하는 데 쓰던 사약의 재료다. 그러나 부자를 잘 가공하고, 차게 먹으면 원기회복을 돕는 약이 된다. 부자의 원기회복 효과 때문에 일부 사람은 부작용을 알면서도 정력제로 쓰기도 한다고 한다.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얘기다.
지난 2013년 초 단통법 제정 논의가 본격화됐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통신업계 출입기자였던 나도 논의 초기에 "말도 안 되는 악법"이라며 단통법 제정에 반대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단통법은 통신시장의 경쟁을 법으로 규제하는 악법이다. 시장경쟁 자체를 막는 것이니 자본주의 경쟁체제를 부인하는 셈이다. 또 기존 전기통신사업법에 과도한 보조금과 이용자 차별을 금지하는 단통법의 주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에 별도의 법을 만들어 경쟁을 제한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시 이동통신 시장 경쟁은 극약처방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고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동통신 회사들은 1년 영업이익의 2배나 되는 8조원 이상을 매년 불법 보조금으로 뿌려가며 경쟁회사의 가입자 뺏기 경쟁을 하고 있었다. 8조원의 보조금은 얼핏 소비자의 단말기 구입비용을 낮춰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을 들여다보면 전국 편의점이나 주유소 숫자보다 많은 휴대폰 유통점들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

가장 큰 문제는 이동통신 회사들도 당시의 유통구조 문제나 보조금 경쟁이 결국 산업 전체를 망치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는 불법 경쟁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단통법 자체는 악법이다. 그러나 당시 통신시장 경쟁 상황은 독약인 줄 알면서도 조심스럽게 단통법을 만들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단통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됐다. 1년 사이 시장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동통신 회사들이 가입자 숫자 늘리기를 위한 불법 보조금의 유혹을 견디고 있다는 것이다. 또 소비자가 불법 보조금이 난무하던 예전 같은 시장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최신 프리미엄폰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맞는 중저가폰을 구입하는 소비자가 많아진 게 그 증거다.

도저히 나을 것 같지 않던 이동통신 시장의 고질병이 1년 만에 참 많이 개선됐다. 숱한 비난을 견뎌온 정부도, 이동통신 업계도 참 수고했다.

그러나 개선을 이뤄낸 가장 큰 비결은 시퍼렇게 날이 선 단통법 규제 때문이다. 지금의 개선을 이동통신 시장 고질병의 완치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독약인 줄 알면서도 당장 원기회복을 위해 긴급처방한 부자를 보약으로 장복(長服)하면 안 된다. 정말 죽는다. 단통법을 앞으로 통신산업과 함께 영원히 갈 법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가급적 빨리 시장이 스스로 성장경쟁을 할 수 있도록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단통법의 개선을 준비해야 한다.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개선효과를 우리나라 통신시장의 경쟁체질로 안착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단통법, 그 후'를 지금 준비해야 한다.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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