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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인재를 대하는 묵가의 한계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9.21 17:10

수정 2015.09.21 17:10

[fn논단] 인재를 대하는 묵가의 한계

차별 없는 보편적 복지와 헌신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묵자(墨子)의 사상은 이내 사라진 반면, 유교는 오랜 기간 지속.발전했다. 그 이유에 대한 실마리는 순자(荀子)에게서 찾을 수 있다. 진부해 보이는 유학에 현실감을 불어넣어 2000년 이상 동양의 주류 사상으로 활력을 지속하는 데 기여한 인물로 순자를 꼽기 때문이다.

순자는 묵자의 평등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순자는 "묵자가 말하는 '절용(節用)'은 천하를 가난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묵자가 가진 자들의 씀씀이를 줄여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자고 한 데 대해 순자는 "가진 자들이 허름한 옷을 입고 거친 밥을 먹는다고 해도,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내핍은 궁핍을 가져올 뿐이다"라고 반박한 것이다.

나아가 순자는 사람마다 능력이 다를진대 차등을 인정하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했다. 그는 "만물은 한 우주에 있지만 그 형체는 다르고… 쓰임이 있으며…"라고 말했다. 사람마다 얼굴 모양이 다르듯 능력도 다르고 쓰임도 다르다는 주장이다. 그가 말한 차등은 타고난 신분이나 계급에 의한 것이 아니라 능력에 의한 것이다. 그는 "비록 왕이나 고관, 사대부의 자손일지라도 예의를 따르지 않는다면 서민으로 돌아가게 한다. 비록 서민의 자손일지라도 학문을 쌓고 행실이 올바르고 능히 예의를 따른다면 고관이나 사대부로 삼는다"고 했다.

순자는 순리에 따라 차이를 두는 것을 '분별(分別)'이라 칭하고, 분별을 예(禮)로서 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분별이 잘 이루어져야 생산도 늘고 사회도 평화롭다고 보았다. "귀하고 천한 등급을 두고, 어른과 어린이의 차등을 두고, 지혜롭고 어리석고 능하고 능하지 못한 구분을 두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에 따른 일을 맡겨 각각 그 마땅함을 얻은 다음, 곡식과 녹봉의 많고 적고, 두텁고 박한 정도를 맞춘다면 함께 더불어 화목하게 사는 도(道)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인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순자, 묵자 모두 의견을 같이했다. 묵자도 그의 저서 한 편을 '천하의 인재를 구하라' '능력에 따른 처우를 해주어라'라는 주제에 할애했다. 하지만 일관되게 평등한 분배를 주장하고 있어 묵가에는 인재들이 모이기 힘든 구조였다. 반면 순자는 인재에게 충분한 대우와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포상이 행해지지 않으면 어진 이를 얻어서 등용할 수 없고, 형벌이 행해지지 않으면 어질지 못한 자를 퇴출시킬 수가 없다"고 본 것이다. 결국 우수한 인재를 우대했던 유학은 공자이후 맹자, 순자에서 주자에 이르기까지 학문을 발전시킨 대가들이 끊임없는 뒤를 이은 반면 묵가는 그렇지 못했다.

순자와 묵자 모두 백성과 국가를 편안하고 부유하게 만드는 방안을 고심했던 사상가였다. 그러나 이들이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한 것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랐기 때문이다.
묵자는 날카로운 송곳이 먼저 부러질 것을 우려했던 반면, 순자는 무딘 쇠도 갈아서 날카롭게 만들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능력에 따른 보상이 이루어질 때 인재가 모이고 사회는 발전한다.
유학이 보수적이었다지만 인재에 대한 분명한 우대원칙이 있었기에 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고, 묵가는 불평등의 심화로 사회적 결속이 위협을 받을 때 필요한 사상이었지만 하향평준화라는 한계가 있었다.

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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