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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지구 온난화 비틀기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9.21 17:10

수정 2015.09.21 17:10

20세기 중반엔 한랭화 유행 인류가 진정 걱정해야 할 것은 더위가 아니라 추위다
[곽인찬 칼럼] 지구 온난화 비틀기

지도를 펴기 바란다. 종이 지도가 없다면 구글맵을 띄워도 좋다. 아이슬란드 왼쪽에 그린란드가 있다. 그 사이를 덴마크 해협이 흐른다. 하지만 17∼18세기엔 상황이 달랐다. 추운 날씨로 바다가 얼어붙는 바람에 여름에도 덴마크 해협을 건널 수 없었다.
알프스 빙하는 빠른 속도로 산자락을 덮어 마을을 위협했다. "사제와 교구민들은 그 앞에 모여서 신께 기도를 드렸다"고 지리학자 하름 데 블레이는 기록한다('왜 지금 지리학인가').

지리학자가 보는 세상은 색다르다. 프랑스혁명은 왜 하필 1789년에 일어났을까. 여러 원인이 있지만 혹한 탓에 당시 유럽이 끔찍한 식량 부족에 시달린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게 블레이의 분석이다. 대중의 불만이 혁명으로 타올랐다는 얘기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와 전쟁에서 참패(1812년)한 것은 그때가 '소빙기' 중에서도 가장 추운 시기였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의 가장 큰 적수는 차르의 군대가 아니라 살을 에는 추위였다.

소빙기는 뭘까. 지구 나이는 46억년으로 추정된다. 우주에서는 어린 편이다. 46억년 동안 지구는 수차례 빙하기를 겪었다. 그때마다 지구 생태계는 멸종과 재탄생을 거듭했다. 날씨가 추워지는 빙하기는 빙기와 간빙기를 반복한다. 빙기는 추워지는 때, 간빙기는 잠시 더워지는 때를 말한다. 지금 인류는 플라이스토세(홍적세)라는 빙기가 진행 중인 가운데 홀로세(충적세)라는 간빙기 속에 살고 있다. 간빙기라고 예외없이 더워지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온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바로 소빙기다.

나폴레옹 시대 유럽은 1650년부터 1850년까지 200년 동안 이어진 소빙기를 겪었다. 그중에서도 1675~1735년은 1000년 만에 가장 추웠다. 덴마크 해협이 언 것도 바로 이때다. 불과 반세기 전인 1940~70년대엔 한랭화라는 말이 유행했다. 블레이 기록을 인용하면 "그 시절에 발행된 '사이언스'나 '네이처' 등의 과학저널을 보면 지구 한랭화 가설을 지지하는 논문이 수없이 많았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과연 지구 온난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지구가 홀로세 간빙기 속에 있는 한 추세적인 온난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그 온난화도 결국은 플라이스토세 빙기의 일부분일 뿐이다. 플라이스토세 빙기는 약 4000만년 전에 시작됐다. 홀로세 간빙기는 겨우 1만2000년 됐다. 긴 눈으로 볼 때 진정 인류가 걱정해야 할 것은 더위가 아니라 추위다.

온난화는 인류의 환경 파괴에 대한 자연의 응징일까. 글쎄다. 지구 나이 46억년을 46년으로 압축하면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는 바로 오늘 출현했을 뿐이다. 화석연료를 태워 탄소를 배출하는 현대문명은 불과 1시간 전에 출발했다. 탄소 배출이 온실가스를 만들어 온난화를 부추긴 것은 맞다. 하지만 오로지 그 때문에 지구가 더워지기 시작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종종 제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오만이다. 우리 아니라도 당분간 지구는 더워지게 돼있다.

오는 25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탄소배출량 감축에 공조할 것으로 보인다. 두 나라는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44%를 차지한다. 올 연말엔 파리에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도 열린다. 2020년 이후 범세계적인 탄소감축 로드맵을 짜는 자리다. 한국도 적극 참여할 태세다. 연초에 문을 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이 개점휴업 상태인 것은 잠시 비밀로 묻어두자.

과학의 시대라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광우병이나 메르스 사태를 보면 인간의 이성에 물음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지구 온난화는 어떨까. 온난화에 이의를 제기하면 비도덕적 인간인가. 블레이의 말로 끝을 맺고 싶다. "인류는 기후변화에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대기오염을 줄이는 것이… 국제적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멈추는 형태의 보상을 기대할 수는 없다.
빙하기는 앞으로도 계속 왔다 갈 것이며… 결국 자연의 힘이 승리할 것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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