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급명령 악용한 '소송사기'

채권자 A씨가 빌려준 돈을 갚을 의사가 없는 채무자 B씨를 상대로 대여금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여금 반환 소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A씨는 '지급명령' 제도를 이용하면 소송을 통하지 않고도 채권을 받아낼 수 있다. 장시간 소송에 따른 시간.비용으로 고민하는 채권자를 위해 도입된 이 제도는 채권자가 지급명령신청서에 채무자 이름과 주소, 청구 원인을 기재하고 차용증 등 채무관계를 간단히 입증할 자료만 첨부하면 법원은 채무자를 심문하지 않고 지급명령을 내린다. 지급명령의 효력은 상당하다. 채무자가 신청서를 송달받은 뒤 2주 이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데 이를 근거로 채무자의 은행계좌를 정지시키거나 부동산 등을 압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악용,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허위채권'을 갖고 법원으로부터 지급명령을 받는 '소송사기' 가 속출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취재과정에서 접한 사기 유형 가운데는 사기범이 지급명령 신청 과정에서 법원이 채무자 심문 없이 형식적으로 채무관계 확인을 하는 점을 악용한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사기범들은 노인 등 사회취약층의 주소지로 공범을 보내 지급명령 신청서를 대신 받게 하거나, 신청서를 받더라도 법적 무지나 번거로움으로 이의신청을 대부분 하지 않는 점을 노렸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지급명령 신청을 당했지만 이의제기를 하지 않다가 강제집행을 당한 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요청한 사례는 최근 5년간 69건에 달한다. 강제집행에 대한 청구이의 소송이나 법적 대응을 포기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피해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소송사기 확산을 막을 사회적 논의가 시작돼야 하는 이유다.

소송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급명령 신청이 들어올 때 즉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급명령의 효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본인이 아닌 가족이나 지인이 법원 서류를 받더라도 효력이 발생하는 송달제도 특성상 범행 공모 시 피해자로서는 지급명령 신청이 들어왔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지급명령 절차에서 법원이 채무자에 대해 간단한 확인과정을 거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법 집행을 방해하거나 방해하려 시도하는 행위를 다스리는 '사법질서방해죄' 도입이나 양형 강화도 적극 검토돼야 한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