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대한민국 사이버 영토는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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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한다. 회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는 '사이버 군축'이다. 만약 협상이 타결된다면 지구촌 최초의 '사이버 군축협정'이 탄생한다. 그 내용은 평화 시에는 사이버 공간에서 상대국에 선제 공격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뉴욕타임스 19일 보도).

두 나라는 지난 수년간 사이버 안보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왔다. 미국은 중국이 자국 내 주요 기관의 정보시스템을 끊임없이 해킹해왔다고 의심한다. 중국은 이를 부인하지만 미국 정부와 기업들의 방대한 시스템을 조직적으로 해킹할 수 있을 만한 사이버 군사력을 보유한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미.중 간 사이버 군축협상 개시는 사이버 전쟁이 눈앞에 닥친 현실임을 말해준다. 사이버 안보가 정상회담에서 논의해야 할 만큼 국가안보의 중요한 일부가 됐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인식과 대응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몇 번씩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 '1.25 대란(2003년)'이나 '7.7 디도스 사건(2009년)' '3.20 대란(2014년)' 때는 인터넷이 마비됐다. 한국수력원자력이나 코레일 등 핵심 인프라 기관의 내부 전산망이 뚫린 일도 부지기수다. 심지어 청와대 홈페이지가 뚫린 일도 있었다. 정부는 그때마다 북한의 소행이라고 서둘러 발표했다. 그러나 발표만 있을 뿐 어떤 후속 조치도 뒤따르지 않았다. 그냥 당하기만 하고 끝났다.

지난해 말 소니픽처스 해킹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미국 정부가 보여준 대응은 우리와 너무도 달랐다.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를 제작 중이던 미국 소니픽처스사의 전산망이 해킹돼 수만건의 정보가 유출됐다. 백악관은 이를 북한의 소행이라며 '심각한 국가안보 사안'으로 규정했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런 직후 북한의 인터넷망이 반나절 이상 마비됐다.

사이버 도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에는 사이버 영토를 수호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만약 그런 의지가 있다면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한 이상 보복공격 등 상응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마땅하다. 사안이 영토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휴전선 지뢰도발에는 대통령까지 나서 강력 대응 의지를 보이면서 사이버 도발에는 어물쩍 넘어가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영토를 지키는 것은 국가의 최소한의 존립기반이다. 사이버 영토가 침략당하고 있음에도 응분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건 국가도 아니다.

사이버 전쟁은 선전포고나 사전 경고 없이 한 나라의 산업망.통신망.전력망.에너지공급망.교통망.금융망 등 국민의 생존에 필요한 핵심 시설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저비용으로 핵전쟁보다 더 큰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만약 북한이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면 핵이나 탄도미사일보다는 사이버 전력에 의존하지 않을까. 북한의 사이버 군사력은 지난해 말 현재 6000명이며 사이버 공격능력은 세계 6위로 평가된다. 반면 우리는 600명에 불과하다. 한국은 사이버 강국이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사이버 영토 방위의 임무조차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하고 있다.
대비 태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의 사이버 안보시스템 구축에 관한 기본법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현재 2건의 국가사이버안보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핵심 기반시설인 원전이 몇 번씩 해킹을 당해도 어물쩍 넘어가는 상황을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건가.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