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서른살 행정심판법, 국민에 더 가까이

윤정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9.22 16:49

수정 2015.09.22 16:49

[특별기고] 서른살 행정심판법, 국민에 더 가까이

1945년 10월 27일. 광복의 기쁨이 채 사그라지지도 않은 그날, 부산 적기만 육군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한 소방원이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스무 살이었고, 집에는 아내와 막 첫돌을 지낸 아들이 있었다.

2013년 11월 6일, 일흔 살이 된 아들은 국가유공자유족 등록신청을 했지만 아버지의 사망 시점이 1945년으로 '국가공무원법' 이 제정되기 전이라는 이유로 거부처분을 받는다. 아들은 2014년 7월 10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마침내 지난 2015년 4월 21일 아버지의 죽음이 순직이라는 결정을 받아들게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70년 만이었다.

국가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책임을 다했지만 그에 합당한 예우를 받지 못하는 사례들을 중앙행정심판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자주 접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서라도 이들이 겪은 부당한 처우를 바로잡은 것은 다행이지만, 아직도 국가를 위해 헌신했으나 제대로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많은 선열들이 계실 것으로 안다. 국군의 날이 다가오는 만큼 다시금 고개 숙여 이들을 기려본다.

지금의 행정심판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예로부터 고려의 어사, 조선의 사헌부.의금부와 같은 국민의 권익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들이 존재해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총독부의 수탈과 전횡으로 국민권익은 언감생심이었고, 광복 이후 1951년 '소원법'이 제정되었으나 내부공무원으로 구성된 자문기구였던 소원심의회는 법적효력도 공정성도 결여된 사실상 유명무실한 기관이었다. 그러던 중 1985년 10월 1일, 드디어 명실상부한 행정심판 제도가 마련된다. 기존 소원법의 한계를 보완해 행정심판위원회가 자문기관에서 의결기관으로 격상되는 등 심판의 공정성.객관성 확보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행정심판법이 시행된 것이다. 이후 1996년, 2008년 두 차례 행정심판법이 대폭 개정돼 각부 장관 소속의 행정심판위원회의 일원화, 처분청 경유제도 폐지, 행정심판위원회 직접 재결 등이 실현됐다.

이렇듯 지속적으로 발전하며 행정심판은 2010년 최초로 연간 청구건수 3만건을 돌파한 이래 꾸준히 국민의 권리구제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2만5301건의 행정심판 청구건 중 4131건이 구제됐다. 4131명의 국민이 행정심판으로 억울함을 씻은 것이지만 그만큼 행정기관의 위법.부당한 처분이 행해지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오는 10월 1일 30주년을 맞는 행정심판은 새로운 30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도입해 확대하고 있는 '온라인 행정심판'으로 권리구제의 사각지대를 없애나가는 중이다.
서른 돌의 행정심판, 이제 굳건히 서서 곧고 바르게 뻗어나갈 시점을 맞았다. 과거 30년은 독립성.공정성 확보와 실효성 확대로 내실을 다져왔다면 앞으로는 국민 곁으로 다가가 더 널리 쓰이는 제도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행정심판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국민 앞에 성큼 다가선 만큼, 우리 국민들도 행정심판을 가까이 여기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적극 활용해 권익을 구제받으시길 바란다.

홍성칠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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