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기업의 애국장병 특채


최근 취재차 들른 포스코의 경북 포항제철소 현장에서 이 회사 창업주 박태준(1927∼2011)이 걸어온 길을 새삼 떠올려봤다. 1960년대 후반 제철소 건립 추진 당시 "한국은 철을 생산할 능력도, 여건도, 배짱도 없다"며 돈을 빌려주지 않았던 해외 기관은 박태준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몰랐던 탓이 크다. 일이 잘못되면 바로 '우향우' 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겠다던 박태준은 제철소 건립까지 숱한 일화를 남겼다. 고로 1기 공사 시절, 90m가 넘는 철구조물 위에서 느슨하게 조여진 볼트를 발견하고 수십만개에 달하는 볼트를 모두 재확인하게 해 보수공사를 지시한 일은 유명하다. 3기 공사 땐 부실하게 박힌 강철말뚝을 본 뒤 기초공사가 거의 끝난 상태에서 현장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킨 사건도 있다.

이런 박태준의 역사는 1960∼70년대 기적의 한국경제 시리즈 중 한 편에 속한다. 포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울산에선 정주영(1915∼2001)이라는 인물이 세계서 듣도 보도 못한 일을 꾸미고 성공시키지 않았나. 나무배만 만들던 나라에서 무슨 대형 선박이냐는 비아냥에도 결국 정주영은 해냈다. 세계 최강 조선소를 한국에 안겼다.

박태준의 포스코, 정주영의 현대중공업. 두 회사는 창업주의 무모하다 싶은 열정, 도전으로 '무'에서 '유'가 됐다는 점이 닮았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가난을 면치 못할 것 같던 나라에 새로운 길을 내줬다. 물론 세대가 바뀐 지금, 이들이 남긴 기업들이 둘 다 피할 수 없는 시련기를 맞고 있다는 건 안타까운 대목이다. 가끔 이들이라면 지금 위기에 어떤 묘책을 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주영과 박태준의 신화는 산업화시대 보국의지의 결과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기업과 나라 발전을 함께 생각하며 내달렸던 용맹함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이다. 최근 만난 '스타트업' 육성기관 관계자는 "대학생들이 갈수록 도전을 기피하는 걸 느낀다. 고학력일수록 도전정신은 더 없다. 대의는 생각할 여지도 없는 것 같더라"고 했다. 취업절벽 앞에 잔뜩 위축된 젊은이들 모습이 스쳤다.

SK그룹은 지난달 남북 경색 국면에서 전역을 연기한 80명에 속하는 60여명 장병을 대상으로 23일 특별채용 설명회를 가졌다. 자칫 최악의 순간도 예고됐던 순간, 전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선택을 했던 그들은 이제 예기치 않은 취업 선물을 받게 된다. "이들의 열정이 회사, 국가 발전에 귀중한 DNA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 특별한 채용에 대해 SK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SK의 올해 대졸 신입공채 규모는 대략 8000여명. 여기에 60여명 애국장병을 추가로 뽑는다고 해서 신입사원 채용 근간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확인시켜줬다.
장병들의 장점, 전문성, 취향 등을 고려해 SK는 부서를 배치할 방침이라고 한다. 능력과 무관한 곳에 엉뚱한 인사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들 장병은 찬란한 스펙으로 무장한 이들의 실력과 맞장 뜰만한 열정, 애국심, 패기가 있으니 자격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경이로운 이력의 소유자들이 갖지 못한 근성, 기질로 회사와 나라에 보탬이 될 수 있기를. 기업의 이런 채용 이벤트를 보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다.jins@fnnews.com 최진숙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