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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음] 뒤늦게 중국을 다시 본다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9.30 16:49

수정 2015.09.30 16:49

[이구순의 느린 걸음] 뒤늦게 중국을 다시 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찾았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 등 굴지의 정보기술(IT) 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이 일제히 시 주석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섰다.

명실상부 세계 최대 시장을 가진 나라의 최고 권력자이니 그럴 만도 하다고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데 뭔가 그동안 내가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덮어뒀던 것을 일깨워주는 현장을 확인하는 것 같아 못내 뒷맛이 개운치 않다.

지난 10년 가까이 우리나라 모든 산업 분야에서 '중국을 다시 봐야 한다'는 울림이 있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러다가는 중국에 뒤진다"는 경고를 해왔다.
그렇지만 IT분야는 유독 그 경고를 신중히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사실 우리나라의 IT는 지난 20여년간 자칭 '세계 최고'였다. 세계 최고의 통신 인프라와 그 위에서 탄생하는 여러 기술을 선도했던 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애플 아이팟보다 먼저 우리가 MP3를 만들어 세계 음악시장을 뒤바꿔놓을 기회를 잡을 뻔했었다. 페이스북이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성장했지만 한국인들은 그보다 10년이나 앞서 싸이월드를 즐겼다.

25년 전 우리나라는 세계에 없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이라는 기술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국 디지털 이동통신망을 확보했다. 그 위에서 100년 가까이 세계 이동통신 시장을 쥐락펴락했던 모토로라의 휴대폰을 능가하는 '애니콜'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니 우리나라 IT분야가 중국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다음 단계를 만들지 못했다. 새것을 수용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과거의 성공사례 위에 편안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최근 중국을 돌아보고 온 한 선배는 "이미 늦었다"고 진단했다. 그 선배는 "중국에서는 이미 온라인·오프라인 연계서비스(O2O)가 일상화돼 있고, 핀테크는 경제활동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더라"라고 했다. 정보보안 산업에서 이미 한국은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술이나 시장 모두가 뒤져 있더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시 주석을 만나려 줄 서는 세계적 IT기업 CEO들의 행렬이 비단 중국의 시장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국의 힘은 거대시장이 아니라 문화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산업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는 힘 아닐까. 새 기술이 기존 질서를 깨면서 새로운 산업으로 싹트려할 때 새것을 받아들이는 문화. 이것이 굴지의 CEO들을 군침 흘리게 하는 중국의 힘 아닐까. 뒤늦게나마 우리 정부와 기업들도 중국의 IT분야를 다시 보겠다고 나선다고 한다.
다행이다.

그런데 우리 IT가 중국에서 배울 것은 중국의 기술이나 시장 움직임만이 아니다.


새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존 질서를 설득하는 요령, 기존 질서와 새 기술이 충돌할 때 중재할 수 있는 능력. 뒤늦게 중국을 다시 보면서 우리가 진정 배워야 할 것은 이 문화가 아닐까 싶다.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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