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빚복지, 누가 문을 열었나

박근혜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 카드를 꺼냈을 때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다. 정부는 세율에 손대지 않고도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세금을 제대로 물리고(비과세감면 축소), 알차게 쪼개 쓰고(세출 구조조정), 새는 곳을 틀어막으면(지하경제 양성화) 가능하다고 했다. 정부가 자신 있게 말했기에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설마 빚내서 복지 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임기 중반을 넘기면서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가채무 통계는 나라살림의 최종적 성적표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당시 전임 이명박정부로부터 443조원의 나랏빚을 물려받았다. 임기 말에 692조원의 빚을 다음 정부에 넘겨줄 것으로 예상된다. 5년간 249조원이 증가하는 셈이다. 역대 정부의 증가액은 김대중 73조원, 노무현 166조원, 이명박 144조원 등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나랏빚을 가장 많이 늘린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 확실하다.

복지와 빚이 만나면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복지는 늘리기는 쉽지만 한번 늘어난 복지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빚은 중독성이 강한 마약과 같아서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이 둘이 합쳐지면 탈출구 없는 함정이 된다. 거기에 빠져서 무사했던 나라는 없다. 한국이 그 함정의 초입에 들어섰다.

사실 처음부터 미덥지가 않았다.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면 왜 복지 한다며 재정을 거덜 낸 나라들이 속출했을까. 국가부도를 내고 구제금융으로 연명하고 있는 그리스는 그걸 몰라서 그 지경까지 갔을까.

복지는 빚이 아니라 증세와 만나야 한다. 증세는 국가 지도자와 국민이 복지에 도취돼 과속주행 하는 것을 예방하는 브레이크다. 이 둘이 합쳐질 때 견제와 균형이 가능해진다. '증세 없는 복지'는 럭셔리 카에서 브레이크를 떼어낸 것과 같아서 위험하다. 우린 지금 그 위험한 길을 내닫기 시작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증세 없는 복지'를 공약했지만 또한 "재정건전성을 무시하는 복지에는 반대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빚내서 복지 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빚내서 복지를 했다. 이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을 빌리면 '국민을 속이는 것'에 해당한다. 처음부터 국민을 속이려고 했을까. 아닐 것이다.

'증세 없이 비과세.감면 축소와 세출 구조조정, 지하경제 양성화만으로도 복지비용을 댈 수 있다'는 명제를 고안해낸 경제학자가 있을 것이다. 만약 이 명제가 실현 가능하다면 노벨경제학상감이 되고도 남는다. 과잉복지로 재정이 결딴나는 것을 예방하는 일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경제전문가가 아니다. 누군가가 박 대통령에게 거짓 믿음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학자들이 선거철에 성향이 맞는 후보 진영에 들어가 정책개발에 참여하는 것 자체는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소신과 철학도 없이 선거 때마다 정치권 주변을 기웃거리는 철새 학자들은 걸러져야 한다. 그들이 검증되지 않은 이론과 포퓰리즘 공약으로 국가경제를 농락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가 실상은 '빚복지'였다는 사실을 국민 대다수는 요즘에야 알게 됐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집권 초기부터 나랏빚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것이 국가채무 통계에 잡히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말귀를 알아들었을 때는 이미 나랏빚이 턱없이 불어난 뒤였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명제로 권력자에게 곡학아세하고 국민을 혹세무민한 경제학자는 누굴까.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