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난제 중 난제' 존엄사 법제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나 자란 브리트니 메이너드는 2014년 1월 심한 두통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가 악성 뇌종양 2기 진단을 받았다. 뇌수술을 받았지만 3개월 뒤인 4월 뇌종양 4기 진단과 함께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잦은 발작이 일어났고 머리와 목에 참기 힘든 통증이 밀려왔다. 당시 메이너드는 5년 열애 끝에 결혼한 지 2년이 채 안된 새댁이었다.

그녀는 가족들 앞에서 담담한 최후를 맞고 싶다며 의료진으로부터 처방받은 약물을 복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조력자살(assisted suicide)을 택했다.

그리고 남편의 생일 다음날인 11월 1일을 자신의 죽음 예정일로 삼고 자신이 평생 살았던 캘리포니아주에서 오리건주로 이사했다. 캘리포니아와 달리 오리건주는 1994년 생명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에게 스스로 죽음 결정권을 부여하는 '존엄사법'을 통해 존엄사를 합법화했기 때문이다.

메이너드는 죽음을 한 달여 앞둔 2014년 10월 6일 자신의 결심을 담은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그녀는 이 영상에서 "뇌종양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들어서 알고 있는 대로 내가 죽지 않아도 돼서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릅니다"고 말했다. 또한 "남편과 엄마를 옆에 두고 위층에 있는 남편과 저의 침실에서 죽을 생각이에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평화롭게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죽음 예정일 이틀 뒤인 11월 3일 존엄사 옹호 시민단체 '연민과 선택'은 "메이너드가 가족과 친구들에 둘러싸여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메이너드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여 만인 지난 5일 캘리포니아주는 존엄사법을 통과시켰다. 오리건, 몬태나, 뉴멕시코, 버몬트, 워싱턴에 이어 미국에서 존엄사를 합법화한 6번째 주가 된 것이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1992년부터 6차례 존엄사 합법화가 시도됐지만 가톨릭 등 종교단체와 의사협회의 거센 반대에 번번이 실패했다. 이번에도 존엄사법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져 해당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한때 사제공부를 했던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해당 법안을 반대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브라운 주지사는 존엄사법 통과에 서명했다. 70대 후반의 나이인 브라운 주지사는 존엄사법에 서명한 이유에 대해 "만일 내가 지속적이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으로 가능해진 선택을 고려할 수 있다면 안심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듭니다"라고 설명했다.

오리건주에서 1994년 존엄사법이 합법화됐을 당시 핵심 역할을 했던 피터 굿윈 박사는 2012년 3월 미 시사주간지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존엄사법이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지 않는 이유를 '침묵의 음모'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의 생명은 신이 주신 것이므로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종교계의 반대, 병 치료와 생명 살리기가 목적인 병원에서 죽음을 언급할 수 없는 의료계의 어려움, 말기 암과 불치병은 더 이상 치료가 안되며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일반인들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침묵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2009년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 때 대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한 뒤 2013년 7월 사회적 협의기구에서 법제화를 권고했지만 아직 진전은 미미하다.

존엄사법이 제정되지 못하는 이유가 굿윈 박사의 말처럼 '침묵의 음모'인지 생명존중을 위한 용감한 '외침' 때문인지 판단하기는 참 어려운 문제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로스앤젤레스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