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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맥빠진 국감 더이상 안된다

정인홍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0.09 17:02

수정 2015.10.09 17:02

[여의도에서] 맥빠진 국감 더이상 안된다

19대 마지막 국정감사가 끝났다. 정부의 1년 국정 농사(農事)에 대한 신랄한 평가와 점검을 통해 국정의 '허와 실'을 집중적으로 파헤쳐 국민 삶의 질과 직결되는 정부정책에 적극 반영·개선시키는 과정이 국정감사다. 하지만 '성적표'는 초라했다.

제대로 된 '권위'가 없었던 호통국감, 제대로 된 '한 방'이 없었던 맹탕국감, 제대로 된 '비판'이 없었던 망신국감, 제대로 된 '지적'이 없었던 빈손국감으로 귀결됐다. 또한 제대로 된 '참신함'이 없었던 재탕국감, 제대로 된 '집중'이 없었던 쇼핑국감 등 초라한 국감 결산을 표현하는 맥빠진 단어들의 등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여야도 이를 부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탓'이 아니고 '남 탓'이다. 통렬한 정부·여당의 자기반성을 이끌어내겠다던 여권의 호언장담은 국정 감사(監査)가 아닌, 그저 국정에 대한 감사(感謝) 표시로 끝나버렸다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박근혜정부의 중간평가를 통해 엄중한 정권교체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만천하에 알리겠다는 야권의 야심찬 포부는 '대답 없는 메아리'였다.

매년 국감의 초라한 성적표가 공개될 때마다 정치권과 정계, 언론 등은 국감 무용론을 앞세워 상시국감, 분리국감 등 대안을 쏟아내며 정치권의 변화를 주문했다. 하지만 금배지라는 지상과제가 달려있는 내년 20대 총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과연 남의 일(20대 국회)에 얼마나 관심을 쏟을지 의문이다.

매년 그렇듯 국감 무용론의 한 근거로 천문학적인 유무형의 비용 대비 미흡한 편익이 지적된다.

예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지루한 공방과 정쟁, 막말, 고성이 오가는 저질 국감장 주변에 정부부처 공무원들이 하루종일 대기하는 장면은 흡사 명절 때마다 틀어대는 '재방송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국감 말미에 한 상임위가 첫 화상국감을 시연했지만 성과 없는 국감 피날레를 장식하는 하나의 '홍보물'처럼 인식됐다. 여야 대표의 뛰어난(?) 정무적 감각도 맹탕국감으로 변질되는 데 한몫했다. 박근혜정부가 반환점을 도는 시기에 열린 19대 마지막 국감으로서 정부 실정을 가감 없이 파헤쳐야 하는 시기에 공천룰, 재신임 화두를 던져 국감의 맥을 끊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거취를 묻는 재신임 카드를 정국돌파의 승부수로 던져 야당 판이 돼야 할 국감의 집중도를 흐렸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안심번호공천제라는 공천룰 의제로 내홍을 스스로 키우면서 국감의 초점마저 흐렸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민경제'와 '민생'을 강조하던 여야 대표가 스스로 민생 수준 업그레이드의 장(場)이 돼야 할 국감이라는 무대를 정쟁의 장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당장 국회는 이 거대한 비효율성의 수준을 계량화시켜야 한다. 얼마나 많은 인력과 시간, 비용(혈세)이 그저 그렇고 그런 '통과의례'쯤으로 전락해버린 국감 유지를 위해 소모되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이를 국민 앞에 공개해 효율적인 국감시스템으로 혁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20대 국회부터 이런 정쟁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국정감사 평가'를 각당의 '유의미한' 공천기준으로 삼으라는 주문도 있다.

현재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평가작업으로는 국회의원 자질을 평가하기에 다소 부족한 측면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피감기관인 정부, 시민단체, 각 정당이 합동평가를 통해 의원들의 국감 성과를 분야별로 지표화해서 각당이 이를 공천 시 참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치권은 국감증인 채택 여부를 둘러싸고 막말과 고성까지 주고받았던 모 상임위에 국감증인으로 불려나온 모 대기업 총수의 인기가 국감 이후 오히려 올라가면서 앞으로 재벌총수들의 국감 기피현상이 줄어들 것이라는 희화성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


중앙부처 한 공무원은 "정부 실정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나 정책적 대안을 내놓는 등 어떤 의원이 제대로 국감을 했는지는 피감기관의 공무원이 너무 잘 안다"며 "공무원 여론조사를 통해 베스트 국감의원을 뽑는 게 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정치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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