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

동력 잃은 한·미 경제외교 어떻게 푸나

中과 가까워진 한국에 불만 커진 美 경제라인 설득해야
한국 환율·경상수지 흑자 IMF 美측 인사 문제제기
오바마의 복심 중의 복심 美 재무장관 中·日만 방문
이번 한·미 정상회담 통해 경제관계 회복 계기 마련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페루 리마를 방문 중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지난 9일(현지시간) 페루 중앙은행에서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과 양자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제이컵 루 미국 재무부 장관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비서실장 출신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복심(腹心) 중의 복심이라 할 만하다. 그는 지난 2013년 2월 미국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직후 오바마 대통령 특사로 중국을 방문, 새롭게 출범하는 양국 정부 간 첫 가교 역할을 했다. 그런 그가 재임기간 2년8개월이 지나도록 아직 한 번도 한국을 찾지 않았다. 일본.중국 출장길에서도 한국은 제외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전임자인 현오석 부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연례총회와 같은 다자회의에서나 그와 얼굴을 마주하는 정도다. 한 전직 경제관료는 "미국 재무부 장관이 취임 첫해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찾지 않는 美 재무장관

루 장관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문제, 위안화 저평가 이슈를 안고 도쿄와 베이징.싱가포르 등을 방문할 당시 한국 정부의 대외경제 및 통상 분야 우선순위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협상 참여 등이었다. 그사이 미국 산업계의 한.미 FTA에 대한 불만과 애로사항들은 켜켜이 쌓여갔다.

11일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소식통은 현재 한.미 관계에 대해 "양국 모두 최상의 관계라고 하고 있는데, 나쁜 상황은 아니지만 '동력을 잃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반신반의했던 TPP 협상이 기습적으로 타결된 직후 가입 기회를 놓친 정부에 대한 비판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7일 한.미 정상회담 준비차 한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큰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한국이 원하면 (가입 여부를)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이목을 끌었다. 기대 섞인 해석을 낳았던 그의 발언은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발언으로 사실상 정정됐다. 리퍼트 대사는 좀 더 솔직하게 미국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한국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TPP 문제를 활발히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 내에선 한국이 주요 2개국(G2) 시대, 즉 미.중 간 가교 역할이란 새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는 시각이 나온다. 그러나 고위급 레벨에서 한국보다 더 빈번하게 접촉하는 두 슈퍼 파워 사이에서 이런 역할은 제한적이며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되레 소원해진 한.미 관계로 한.미 간 통화스와프 등 결정적 순간 안전핀 기능만 잃을 것이란 우려가 크다.

1997년 IMF 외채협상 당시 '거친 애정(tough love)'으로 묘사됐던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부 장관 등 매파 경제라인의 한국 손보기가 온건하게 급선회했던 건 한.미 동맹을 앞세운 미국 외교안보라인의 설득과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 경제관료는 "서울에서 진행된 외채협상 당시 미국 재무부 관료들 옆으로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따라와 배석했다"고 기억했다. 재무부나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입장 발표에 앞서 외교안보라인인 블링큰 국무부 부장관이 TPP 문제를 먼저 거론한 건 한국 정부의 '중국 경사론'에 대한 완곡한 경고로 해석된다.

■환율.경상수지.TPP 3개의 '톱니바퀴'

최근의 한.미 관계를 두고 미국 경제라인들의 한국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월 13일 한국 정부와 금융기관들을 잇따라 방문한 IMF 연례협의단은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와 관련, "여러 지표상 (한국 정부에 의한) 지속적인 일방향의 환율개입은 전혀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요지로 작성된 연례보고서에 대해 워싱턴 IMF 본부의 미국 측 이사가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는 후문이다. 한 소식통은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와 관련, IMF 연례협의단이 과연 제대로 현실을 보고 온 것이냐는 식의 불만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지난 7월 IMF의 실질적 일인자인 백악관 경제특보 출신의 데이비드 립튼 수석부총재가 중국.독일과 함께 한국을 경상수지 흑자가 큰 나라로 지목하고, 원화가 여전히 5~13% 저평가돼 있다고 지적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엔 미국 의회와 재야에서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와 TPP 가입 문제를 연결시키는 시각이 심심치 않게 대두되고 있다.

TPP 협정문에는 소위 '환율조작국과는 협상하지 말라'라는 식의 문구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통상주권을 쥐고 있는 미국 의회의 분위기는 사뭇 강경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통상관료는 "TPP 추가가입 협상과 관련해선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면서 "추가가입 협상은 미국 의회로부터 추가적인 승인을 받고 진행해야 한다는 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통상관료들은 이 같은 상황을 인식, 내심 한·미 간 무역불균형 문제 해소를 위해 미국 산업계가 제기하는 소위 '기업 애로사항' 등을 들어줄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 방미 경제사절단 규모가 앞서 한·중 정상회담 때를 뛰어넘어 사상 최대 규모인 166명으로 꾸려진 건 소원해진 한·미 관계 회복을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외교.경제분야 전문가들은 오는 16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간 4번째 정상회담이 양국 관계 발전에 새로운 동력을 주입하는 기회의 자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