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불평등과 자본주의

조석장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0.15 16:53

수정 2015.10.15 16:53

[데스크 칼럼] 불평등과 자본주의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자본주의와 불평등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디턴은 "과도한 불평등은 공공서비스, 민주주의 등에 악영향을 준다"면서도 "불평등은 기업가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등 경제성장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국내에선 '21세기 자본론'의 저자로 유명한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 교수에 맞서는 이론이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불평등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피케티는 '자본주의 발전이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며 부유세 신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디턴은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경제성장은 다시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경제와 정치의 영역에서 불평등에 대한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가 성립된 이후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18세기 계몽주의자인 장 자크 루소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인간불평등의 기원을 사유재산 제도에서 찾았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육체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만 전념하다보니 신체적 불평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평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유재산제도가 도입되면서 평등은 사라졌고, 계급이 탄생했다는 것.

토머스 홉스는 자연상태의 인간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war of each against all)을 벌이는데,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절대권력을 지닌 국가와 계약을 해 통치권을 위임했다고 주장했다. 홉스는 이런 국가를 거대한 힘을 지닌 동물, 리바이어던(Leviathan)이라고 명명했다. 이것이 소위 '사회계약론'이다.

사회계약론은 인간들 사이에 정치와 경제의 영역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이익 중에서 가장 큰 두 가지는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이익이다. 경제영역이 실패한 곳에서 정치의 역할이 싹이 튼다. 경제영역인 시장은 '1인1표'가 아니라 '1원1표'로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실종된 시장경제에서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게 된다. 기회의 공정과 결과의 공정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계층 상승의 사다리는 끊기고 만다. 불평등과 불공정이 시장에 만연한다. 이렇게 되면 시장경제는 효용을 극대화하지 못하는 시장의 실패에 걸린다. 정치는 이럴 때 좀 더 공정하고 전체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경제를 통제한다. 다시 말해 정치는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행위'이다.

경제영역이 과도하게 커지면 상업주의가 판치며, 시장원리가 삶의 영역에까지 파고들게 된다. 또 빈부격차가 심해져 시민에게 필요한 결속을 해친다. 이렇게 되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공동체 정신이 깨진다. 정치영역이 과대해져도 부작용이 생겨난다. 정치이념이 과잉화되며 권력투쟁이 난무한다. 공동체 구성원의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경제영역은 얼어붙게 된다. 이 때문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시장의 실패로 제한돼야 한다.


경제와 정치의 관계에 있어서는 효율성과 공정성이란 관점이 중요하다. 피케티와 디턴도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되 모든 것을 평등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최소한의 복지제도를 유지하되 그 이상은 성과체계가 작동하게 시스템을 만드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seokjang@fnnews.com 조석장 정치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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