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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법치로 세상을 바꾼 상앙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0.19 16:52

수정 2015.10.19 16:52

[fn논단] 법치로 세상을 바꾼 상앙

더 이상 백성들은 어수룩하지 않다.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영악하게 움직일 뿐이다. 전국시대, 생산.교역이 늘고 인구도 증가하자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는 욕망으로 국가 간에는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 이런 난세에도 공자의 제자들인 유가는 요순시대 옛 성현의 말씀을 따르라고 가르쳤다. 변한 세상을 예전처럼 덕(德)으로만 다스릴 수 없어 보였다. 새로운 통치 방법이 필요했다.


상앙(중국 진나라의 정치가)은 '법에 의한 통치'가 해답이라고 믿었다. 백성들이 열심히 농사짓고 전쟁터에서 싸울 때 나라는 부강해진다. 영악한 백성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군주는 그들의 이익을 장악해야 한다. 농사와 전투 잘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는 것이다. 군주가 절대적인 힘을 갖고 통치하려면 상과 벌을 명확히 규정한 법에 의존해야 한다. 결국 법치가 치국의 근본이 된다는 것이다.

작은 위(韋)나라의 몰락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상앙은 젊어서 국력이 강한 위(魏)나라로 건너가 재상 공손좌 밑에서 일했다. 상앙이 큰 인물이 될 것임을 감지한 공손좌는 위나라 왕에게 "그를 중용하든지 아니면 다른 나라로 가지 못하도록 죽이라"고 건의했다. 하지만 위 왕은 그 뜻을 새겨듣지 못했다. 그 무렵 진(秦)나라 효공이 천하의 인재를 초빙한다는 초현령을 발표하자 상앙은 진나라로 넘어가 마침내 효공과 함께 개혁의 꿈을 이룬다.

등용 3년 만에 상앙은 '1차 변법'으로 불리는 개혁법을 만들었다. 첫째, 백성을 군주의 강력한 통솔하에 두기 위해 가구를 십 또는 오호 단위로 편재하여 상호 감시.고발케 하고, 죄에 대한 연대책임을 묻는 십오연좌제를 도입했다. 둘째, 노동력과 병역 자원을 늘리기 위해 일정 연령의 아들이 둘 이상인 가정은 강제로 분가시키는 제도를 실시했다. 셋째, 적 한 명을 죽일 때마다 직급과 상금을 올려주는 군공포상제를 도입해 열심히 전투에 임하도록 만들었다. 넷째, 생산을 늘리기 위해 농업생산량이 많은 사람에게 세금과 부역을 면제시키는 법을 마련했다.

그런데 법령에 익숙지 않은 백성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상앙은 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믿음을 심기 위해 '남문 나무 옮기기 행사(南門徙木)'를 벌였다. 남문에 긴 통나무를 세워 놓고 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10금의 상을 주겠다는 포고를 내렸다. 아무도 나서지 않자 이번에는 50금을 준다고 선포했다. 어떤 사람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자 정부는 50금을 주었다. 한편 당시 태자가 법령을 어기는 사태가 벌어졌다. 다음의 보위를 이을 태자를 대신하여 태자의 스승 두 명에게 잘못 가르친 죄를 물어 엄하게 벌주었다. 이때부터 백성들은 법령을 따라야 이롭다는 것을 명확히 깨닫게 되었다.

이어 제2차 변법을 실시했다. 주된 내용은 첫째, 남녀 구별, 부모자식의 같은 방 거처를 금지하는 풍속의 개혁. 둘째, 봉건제 폐지와 군현제 실시, 셋째, 토지등급과 생산량에 따라 세금에 차등을 두는 전제의 개혁. 그리고 도량형 통일 등이었다.


한 사람의 개혁이 짧은 시간 내 서쪽 변방에 불과했던 진나라를 강국으로 바꾸었고 100여년 뒤 진시황제의 중국 통일로 이어졌다. 상앙은 효공으로부터 다음 군주 자리의 제안까지 받지만 거절했다.
그러나 정작 법치로 세상을 바꾼 상앙 자신은 많은 비난 속에 사지가 찢기는 형벌로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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