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무늬만 구조조정'은 안된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시동을 걸었다. 지난 10일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가 열린 페루 리마를 방문 중에 이 문제를 끄집어냈다. "채권단 자율에만 맡겨두니 너무 지지부진해서 정부가 직접 나서 속도를 높이겠다"고 했다. 금융위 등 관계부처가 함께 참여하는 '범정부 구조조정 협의체'를 만들 계획이다. 조선을 비롯해 철강, 해운, 건설, 석유화학 등 과잉투자 업종의 한계기업이 중점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작부터 이상한 말들이 나온다. '무늬만 구조조정'에 그칠 것이란 예상이다. 선거철이 다가오는데 구조조정이 가당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기업 구조조정은 인기 없는 정책이다. 해당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하고,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게 되며, 은행은 대출금을 떼이게 된다. 실업 증가의 부담을 떠안게 되는 정부로서도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 특히 총선을 앞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시중에는 정치적 파급력이 큰 대기업 구조조정을 내년 총선 이후로 미룰 것이란 얘기가 파다하다.

지금 우리 경제는 안팎으로 냉기류가 감돈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과 신흥국들까지 일제히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2008년과 2011년에 이어 세 번째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경제에서도 위험신호가 감지되기는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은행대출 연체율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5월까지만 해도 0.68%가량이었으나 8월에는 1.04%까지 높아졌다. 이 정도면 우리 경제의 뇌관이라는 가계대출(0.46%)보다 월등히 높다. 올 1.4분기에 비금융 상장사 3곳 중 한 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했다. 그만큼 좀비기업들이 양산됐다는 증거다.

이 정도면 감을 잡아야 한다. 지금은 좀비기업들이 유례없는 1%대 저금리에 의지해 간신히 버티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인상이 본격화하면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연쇄 도산할 위험이 크다. 좀비기업 양산에는 최경환 경제팀의 저금리 정책이 일조한 측면도 있다. 시간을 끌면 훗날 더 큰 고통을 맞이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이다. 1990년대 일본은 무너지는 기업들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좀비기업을 양산했다. 이로 인해 '잃어버린 10년'이 '잃어버린 20년'이 됐다. 구조조정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구조조정 지연은 그 몇 배의 고통을 수반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좀비기업이란 자력 생존이 어려워 외부 도움에 의존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을 말한다. 이런 기업들은 스스로는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서 다른 기업들이 생산한 부가가치만 축낸다. 한마디로 경제에는 암적 존재다. 이런 좀비기업이 많아지면 연쇄 도산으로 위기를 초래한다. 위기를 예방하려면 좀비기업을 솎아내야 한다. 그 작업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위기가 닥치고 나면 이미 늦다. 1997년 외환위기에서 우리는 이 점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파산 없는 자본주의는 지옥 없는 기독교와 같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2년 전 정확하게 예측해 세계의 주목을 받은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파산은 자본주의의 숙명이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최경환 경제팀은 정치권의 압력이나 이해관계에 굴복해선 안 된다. 만약 외압에 밀려 이번에 기업 구조조정을 건성으로 해치운다면 그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은 단칼에 해치워야 한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