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76) 줄 하나에 목숨 걸고 화염속으로.. 산불 잡는 전사들

김원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0.21 16:52

수정 2015.10.23 15:15

(76)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산불공중진화대
산불 진화 최전선에서
지상서 접근 힘든 첩첩산중 헬기 레펠 통해 방화선 구축 악천후에도 즉각 출동 가능 고립된 등반객 구조활동도
사명감 하나로 임무수행
강인한 정신력·체력은 필수 특전사·UDT 등 특수부대 다수 충원 적고 청년 기피해 고충도 진화대원 통제할 권한도 절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진천산림항공관리소 산불공중진화대 김필배 대원이 지난 14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에서 열린 제6차 세계산불총회 부대행사로 진행된 산불진화 시범훈련 중 헬기 레펠을 통해 산불 발생지점으로 내려가고 있다. 사진 제공=산림청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진천산림항공관리소 산불공중진화대 김필배 대원이 지난 14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에서 열린 제6차 세계산불총회 부대행사로 진행된 산불진화 시범훈련 중 헬기 레펠을 통해 산불 발생지점으로 내려가고 있다. 사진 제공=산림청


【 평창(강원)·진천(충북)=김원준 기자】 "대관령면 용산리 용산 해발 750m 지점에서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제6차 세계산불총회 기간이던 지난 14일 강원 평창 대관령면 알펜시아에 차려진 산불진화 합동시범훈련장 산불지휘본부. 이곳에 다급한 목소리의 산불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를 접수한 평창군 상황실 근무자는 곧바로 발화지점을 확인하고 군수와 강원도 상황실에 산불 발생 사실을 보고한 뒤 산불전문진화대와 평창군 임차헬기 투입을 지시했다. 그러나 불은 산불진화대와 임차헬기 투입에도 강한 바람을 타고 산 정상으로 계속 번지는 상황. 이즈음 산 너머에서 굉음을 내며 접근하던 산림청 KA-32 카모프 헬기 3대가 산불 현장 상공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버킷을 열어 차례로 물을 쏟아붓는다.


■산불 진화선 구축, 사명감 없이는…

산림청 헬기의 진화수 투하에도 산불은 초속 10m의 강한 바람을 타고 더욱 기세를 올리고 있다. 카모프 헬기로부터 이런 상황을 보고받은 산림청 상황실은 대형헬기 5대와 초대형헬기 1대를 추가 투입하도록 지시한다. 하지만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현장에 동원된 모든 헬기는 복귀명령을 받는다.

동이 트자 진화작업이 다시 본격화됐다. 가용인력과 장비, 헬기 등이 총동원되며 불길이 거의 잡혀가고 있다. 그러나 지형이 험해 지상진화대가 접근할 수 없는 험준한 절벽 쪽으로 불길이 파고들면서 방화선이 뚫릴 위급한 상황을 맞았다. 어렵사리 잡은 불길이 옆산으로 번질 수도 있는 위기다. 이때 절벽 쪽으로 접근한 카모프 헬기에서 로프를 타고 장비를 갖춘 진화대원들이 미끄러져 내려온다. 진화대원들은 헬기 레펠로 험준한 지형의 산악에 내린 뒤 재빨리 방화선을 구축하고 산불을 완전 진화하는 데 성공했다.

자칫 산불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구세주'처럼 나타나 화재를 최종 진화한 이들은 바로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소속 '산불공중진화대' 대원들. 산불공중진화대는 강원 원주의 산림항공본부를 포함해 진천·김포·익산·양산·영암·함양·강릉·안동산림항공관리소 등 모두 9곳에 분산 배치돼 있다.

세계산불총회에 참석한 세계 각국의 산림 관계자들에게 우리나라의 앞선 산불진화체계를 선보이기 위해 마련된 이날 공중진화시연은 진천산림항공관리소 소속 4명의 공중진화대원이 맡았다.

"지상진화대원들이 접근할 수 없는 험준한 지형의 산악에 투입돼 산불 진화선을 구축하는 특수임무는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 16일 충북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산림항공본부 진천산림항공관리소에서 만난 라상훈 산불공중진화대 팀장(43). 공중진화대 근무 19년차 베테랑인 그는 선뜻 '사명감'이라는 말을 꺼냈다. 목숨을 걸고 화마의 심장부로 날아들어 산불 저지선을 구축하는 극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자기암시이자 동기부여인 듯했다.

■매서운 한파에 쏟아붓는 물…온몸 '꽁꽁'

공중진화대는 지상 접근이 어려운 산악지형에 헬기로 투입돼 헬기와 합동으로 초동 진화 작전을 펼친다. 헬기로 물을 뿌려도 잘 꺼지지 않는 급경사지나 암석지, 고압선 주변 등 특수지역 진화를 전담하고 일반 지상진화대 접근이 어려운 험준한 지형에 헬기로 투입돼 산불 확산 저지와 재발화 우려지역의 산불진화 역할을 수행한다. 전시 적진 후방 깊숙이 투입돼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요원과 비슷한 개념이다.

라 팀장은 그동안 한 번도 쉬운 임무는 없었지만 어느 때보다 일찍 발생한 올해 초의 강원 삼척·정선 산불 진화는 유독 까다로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때는 워낙 매서운 한파가 몰아쳐 헬기에서 쏟아붓는 진화수에 바위와 땅이 얼어 미끄러워지면서 임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면서 "진화수를 온몸에 그대로 맞아 옷도 모두 꽁꽁 얼어붙고 살갗이 마비되는 상황까지 갔지만 추위와 사투를 벌이며 결국 불길을 잡는 데 성공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공중에서 고지대의 산불 중심부에 곧바로 투입되는 만큼 고립 상황을 맞기도 한다. 지난 2002년 봄 전북 익산 황궁면에서 발생한 산불 진화 때 라 팀장은 정상 부근에서 산불에 고립돼 방염 텐트를 뒤집어쓴 채 몸 위로 화염이 지나가기를 기다린 아찔한 일도 겪었다.

공중진화대의 임무는 산불진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대원들이 수행하는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산악인명구조활동. 119구조헬기가 출동하기 어려운 악천후에서 상대적으로 바람에 강한 산불진화 헬기를 이용해 사고장소에 접근, 환자를 신속히 후송하는 임무다. 대부분 비바람과 눈보라가 치는 악조건 속에서 이뤄지는 구조활동이어서 위험은 배가 된다. 공중진화대는 지난 2010~2014년 최근 5년간 등반 중 발생한 응급환자 260여명을 병원으로 후송했다. 대원들은 산림병해충 방재작업에도 나선다. 방재작업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지역에서 주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출입통제활동을 벌인다. 산림헬기를 이용한 화물운반지원도 공중진화대 업무다.

평소 상황이 없을 때 공중진화대원들은 체력관리에 집중한다.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요하는 임무를 띤 만큼 공중진화대원들은 대부분 특전사나 해병대, UDT 등 특수부대 출신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체력관리에는 예외가 없다. 체력이 곧 성공적인 임무수행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생각에서다. 대원들이 출동할 때 소지하는 장비는 무게만도 20㎏에 이른다. 대원들은 구보와 웨이트트레이닝 등 기초체력단련은 물론 산악등반훈련, 항공구조훈련, 레펠강화훈련, 응급구조훈련 등 체계화된 다양한 교육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지난 1997년 공중진화대 출범이후 단 한 차례도 임무수행 중 대원들의 인명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평소 체력관리로 산불현장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UDT 출신의 진천 공중진화대 막내 박준호 대원(34)은 "산불이 집중되는 산불조심기간에는 한달 동안 거의 매일 출동한다고 봐야 한다"면서 "한번 출동하면 3~4일 동안 산불현장에서 계속 진화작업을 벌이는 경우도 있어 평소 체력을 관리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고충이 있다. 공중진화대 출범 이후 신규 대원의 충원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대원들의 중장년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 현재 공중진화대 총원은 모두 48명으로 18년 전 창설 당시 정원 40명보다 8명이 증원됐을 뿐이다. 이로 인해 대원들의 평균연령은 48세로 높아졌다. 최연장 대원은 올해 57세로 젊은 대원들과 똑같이 산불진화작업에 나선다.

■중장년화 심화, 신규 충원 시급

한 대원은 "나이가 많은 대원은 화재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산불진화정책 및 행정을 담당하는 업무로 전환시키고 젊은 대원을 충원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돼야 대원들의 사기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보다 효율적인 산불진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원들은 산불 현장에서 일반진화대원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많은 산불 진화 경험으로 산불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데다 산의 지형과 특성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공중진화대원들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지상진화대원 등 여러 기관에서 모인 현장 진화인력을 통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언제 어느 때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 때문에 마음 놓고 가족들과 제대로 여행 한번 떠나지 못한 것이 대원들의 마음 한켠을 짓누르고 있다.
라 팀장은 "항상 대기상태이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점이 마음의 짐"이라면서 "국민의 인명과 재산보호를 위해 우리만이 해낼 수 있는 특수한 임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고 속내를 밝혔다.

kwj5797@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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