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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달라진 게 없는 자본시장

차석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0.22 16:53

수정 2015.10.22 16:53

[데스크 칼럼] 달라진 게 없는 자본시장

돌아온 장고는 아니지만, 3년여 만에 다시 자본시장 취재를 하게 됐다.

2013년인가, 떠날 당시 자본시장은 국내 주요 대형 증권사들이 대형 투자은행(IB)으로 발돋움하려는 첫걸음을 뗐다. 동네 구멍가게처럼 제한된 국내 주식시장에서 거래대금에 목매지말고 글로벌 IB처럼 덩치와 실력을 키우라는 금융당국의 정책일환이었다.

즉 골드만삭스, JP모간 등 글로벌 IB들과의 경쟁을 할 수 있는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적극 육성하겠다는 금융당국의 구상이었다. 금융당국은 '자본시장법개정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국내 자본시장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대수술을 단행했다.

일반 증권사와는 달리 대형 종합금융투자 사업자로서 기업 인수합병 대출과 비상장주식 직거래 등의 역할을 맡아 그동안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IB들이 장악해온 업무를 우리 금융사들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대우, 삼성 등 5대 증권사들은 자기자본을 3조원 이상으로 맞춰 종합금융투자회사 간판을 달았다. 금융당국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3년 만에 돌아와보니 자본시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종합금융투자 사업자 간판을 단 5개 대형 증권사들은 글로벌 IB들과의 경쟁은 어불성설이고 여전히 거래대금에 의존하는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말을 들어보니 각종 규제에 묶여 종합금융투자사들은 3년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것이다. 이들에 기업 신용공여를 허용해 놓았지만, 안전장치를 빌미로 각종 규제그물이 있어 진정한 IB업무를 할 수 없었다. 당초 취지와 달리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격적인 영업을 해야 하는 IB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예를 들어 모든 신용공여액을 합산해 자기자본 한도 이내로 제한한 점이다. 신용융자 등 개인 주식관련 대출이 자기자본의 40% 이상을 차지해 당초 출범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영업용순자본비율(NCR)도 기업 신용공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이유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건전성 부담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IB가 되기 위해서는 해외영업망 또한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국내 증권사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부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지점수를 줄였다.

얼마 전 금융당국은 또다시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우는 것을 골자로 하는 '금융투자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확정해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경쟁력 강화방안의 골자는 종합금융투자 사업자로 지정된 5대 증권사가 자기자본의 100%까지 기업금융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이에 이들의 기업금융 한도 규모는 2조원대에서 최대 18조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은 운신의 폭이 넓어져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수 있게 됐다. 금융당국이 이처럼 자기자본 규제를 대폭 풀어주는 것은 지난 3년간 정책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6월 말 현재 국내 증권사의 IB 수익 비중은 10% 미만인 데 비해 골드만삭스는 70%에 육박한다.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일단 업계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외환거래 등 아직도 제한된 업무영역이 있지만, 일단 뭔가 해볼 수 있다는 틈새가 열렸다.


이제는 업계가 진정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은행들만 하고 있는 영역의 빗장을 열 수도 있다.
앞으로 또 3년이 흘렀을 때 국내 자본시장에서 과연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탄생 가능성을 엿보기를 기대해본다.

cha1046@fnnews.com 차석록 증권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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