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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접시가 날아도 가정은 행복의 근원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0.27 16:49

수정 2015.10.27 16:49

[여의나루] 접시가 날아도 가정은 행복의 근원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27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2015 세계천주교가정대회' 미사를 집전한 자리에서 "사랑은 아주 간단한 행위에서 시작되고, 가정에서 사랑이 구체화된다"며 "가족은 때로 다투기도 하고 접시도 날아다니지만 그래도 가정이 '희망의 공장'"이라고 말했다. 교황이 당초 하고자 했던 강론의 연설문에는 "가정생활을 위한 여유를 남겨두지 않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고, 가정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법이 없는 나라엔 미래가 없다"고 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난 19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 48분으로 OECD 평균 151분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삶의 질은 최하 수준이라는 얘기다.

사회는 다름 아닌 개별 가정의 집합체다. 가정의 해체는 곧 건강 사회의 붕괴로 이어지므로, 가정을 잘 유지하는 것이야 말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집안에 '접시'가 날아 다니면 가정의 평화는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다.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어떻게든 '접시'가 날기 전에 그쳐야 한다. 가정이 여전히 '행복의 근원'이고 '희망의 공장'이 되기 위해 가족 간에 불화를 미리 막고, 불화가 일어나더라도 곧 수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교황이 국가더러 '가정생활의 여유'를 확보하게 하는 입법을 촉구하는 것은 가족 간 의사 소통 시간을 충분히 가지게 하라는 취지로 들린다. 그런데 우선 나 자신부터 소통 시간은 물론 테크닉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자식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다 보니 부자 간 대화가 서먹하다. 세계적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Jordan)의 영문 이름을 '요르단'으로 읽었다가 농구를 좋아하는 아들로부터 아버지의 그런 무식함이 바로 자신에 대한 무관심의 징표라는 오해를 받았다. 부부 간에는 제자 가섭만이 부처의 뜻을 알고 지었다는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나 이심전심(以心傳心)이 통하지 않는다. '행복한 결혼은 약혼한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지루하지 않은 기나긴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는 앙드레 모루아의 말이 실감난다.

소통 과정에서 갈등이 증폭되는 주요 원인은 상대방 말을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식으로 곡해해 버린다는 점이다. 특히 남자는 여자의 이어지는 긴 말을 종종 듣기 싫은 잔소리로 여긴다. 잔소리라 싶으면 '여자의 머리는 길다. 그 혓바닥은 더 길다'라는 스페인 속담을 떠올리자. 몽테뉴의 말처럼 아내는 인내를 가르쳐준 최선의 교사라 여기고 여기서 인내심을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 정신분석학의 대화치료(talking cure)라는 것도 의사가 그저 들어주기만 해도 환자의 히스테리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치유된다고 하지 않는가.

불화의 또 다른 주요 원인은 상대방과의 차이 그리고 자율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하면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리란 기대는 엄청난 오해이자 착각이다. 사랑에 대하여 에리히 프롬은 '각자 개성과 독특성이 유지되면서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했고, 칼릴 지브란은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마음을 주되, 서로의 마음속에 옭아매어 묶어 두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불완전하기 마련인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사랑을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냉탕 온탕, 지옥과 천당이 반복된다. 교황은 그래서 "절대 화해하지 않은 채 하루를 마감하지 마라"고 당부한다.
성경 시편에서처럼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 비슷하다. 잠들어 있는 아내의 얼굴을 가만히 보면 언제 세월이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삶의 덧없음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가만히 손을 잡아 보면 따스한 체온이 느껴진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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