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순의 느린걸음]

숙제 안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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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주파수 전쟁이다. 어림잡아 2년에 한번씩은 전쟁이 터진다. 싸우는 어느 한 쪽도 양보가 없다. 싸우는 양측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싸울 수 밖에 없는, 양보할 수 없는 절박함이 이해된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2.1㎓ 주파수 확보전 얘기다. 총 120㎒ 폭을 이동통신 3사가 나눠 쓰고 있는 2.1㎓ 주파수 중 100㎑폭은 내년 말 사용기한이 끝난다.

전체 폭의 절반을 쓰고 있는 SK텔레콤은 전파법 규정대로 현재 사용 중인 60㎑를 고스란히 다시 쓰겠다고 한다. 전세계약 재연장 요구다. 법에는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서비스 안정성을 위해 기존에 사용하던 이동통신회사의 주파수 사용기한 재연장을 권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2.1㎓ 주파수 중 20㎑폭만 쓰고 있는데, 무선인터넷 사용자가 늘어 좁다고 한다. 4차선 고속도로가 필요한데 지금 주파수로는 2차선 밖에 안되니, 20㎒ 폭을 더 받아겠단다. 그래서 옆집 SK텔레콤이 쓰는 주파수 중 20㎒를 재계약하지 말고 LG유플러스가 쓰도록 해 달라는 말이다. 그것도 시장에 갱매로 내놓지 말고 SK텔레콤의 재계약과 같은 값에 달라고 한다. 이동통신 회사가 3개이니 120㎑ 폭을 똑같이 나누고, 값도 똑같이 해 주는 것이 공평하단다.

두 회사 모두 지금 양보하면 장장 2017년에 무선인터넷 품질이 떨어져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주파수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한번 짚어보자. 주파수 전쟁의 원인은 뭘까? 왜 2년이 멀다하고 전쟁을 벌여야 할까?
주파수는 쓸 수 있는 범위가 한정돼 있다. 전국에 땅이 널려 있지만, 실제로 집을 지어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한정적인 것과 같다.

국토를 관리하는 정부는 인구가 늘어나는데 맞춰 택지를 확보해야 한다. 간척을 하든지, 산을 깎든지...그게 정부의 첫번째 과제다. 두번째 과제는 택지공급 정보를 사전에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건설사들이 집을 짓고, 사람들도 살 집에 맞춰 돈도 모으고 인테리어 계획도 세울 수 있다.

미래부는 주파수를 제대로 확보하는 숙제를 풀지 못했다. 무선인터넷용 주파수가 부족하다는 얘기는 이미 7년 전부터 예견됐었다. 그런데도 이동통신에 쓰기로 했던 700㎑ 주파수까지 방송사에 내줬다. 주파수가 부족하니 싸움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또 주파수 공급 계획을 미리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내년 말 시용기한 만료를 앞두고 당장 다음번에는 어떤 유망한 주파수를 내놓을 것인지 아무도 정보가 없다.
정보가 있어야 싸우다가도 다음기회를 보고 양보도 협상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결국 매번 주파수 사용기한이 끝날 때 마다 혈투를 조장하는 것은 숙제에 게으름 피운 정부다.

당장 첫번째 숙제가 어렵다면, 두번째 숙제라도 풀어야 한다. 그것으로 이동통신 회사들의 싸움을 중재하는게 그간 숙제를 게을리한 정부가 지금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