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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면세점은 내수업종 아니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0.28 17:17

수정 2015.10.28 17:17

매출의 80%가 외국인
세계는 대형화 열풍인데 정부는 규제 강화 역주행
[이재훈 칼럼] 면세점은 내수업종 아니다

다음 달 초 선정될 시내면세점 3곳의 사업권을 둘러싼 대기업들의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입찰에 참여한 대기업들은 총수의 사재까지 털어가며 점수 따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롯데.SK.두산.신세계 그룹은 지역상권과의 상생, 청년창업 활성화, 사회공헌 등에 수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롯데 신동빈 회장이나 두산 박용만 회장은 아예 100억원씩 사재를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입찰 경쟁은 '돈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기업들이 면세점 하나 따내자고 이렇게 어마어마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제시하다니 선뜻 이해가 안 간다.
면세점 경영능력, 투자 계획보다 사회공헌 계획이 더 중요한 심사항목이라는 뜻일까. 관세청의 평가기준에는 사회공헌 항목 비중이 15%에 불과하다. 그러나 면세점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며 면세점 특허는 '특혜'라는 세간의 인식이 문제다. 특혜를 받으려면 뭔가 내놓아야 하지 않느냐는 여론의 눈총을 기업이든, 정부 측이든 의식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기업이 '내놓을 것'이 차별화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매년 20% 이상 성장해온 한국 면세산업은 어느덧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지난해 전체 매출은 8조3000억원으로 세계시장의 12%를 점유했고, 55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올해는 10조원 매출을 바라보고 있다. 급증하는 유커(중국인 관광객) 덕분이다. 내수침체로 백화점, 대형마트 등 국내 유통업 전반이 부진할 때도 면세점은 예외였다. 기업들이 성장동력으로 점찍기에 충분하다. 특히 시내면세점은 공항면세점에 비해 입점수수료 부담이 적고 규모를 크게 운영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정부가 허가권을 쥐고 진입을 제한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2013년 관세법 개정 이후 5년마다 면세점 특허심사를 하고 있다. 기업들은 사업권 따내기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이러니 특혜 시비가 생겨난다.

진입장벽이 문제의 본질이라면 이를 없애는 것이 상식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나 정치권은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 최근 열린 공청회에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매출액 비중 30% 이상인 시장지배적 기업의 특허 입찰을 제한하고, 특허수수료를 현재의 10배로 올리는 등의 방안을 정부안으로 제시했다. 현재 국회에는 10여개 면세점 관련 법안이 제출돼 있는데 하나같이 면세점 업체를 규제하는 내용이다. 세계적인 추세를 거스르는 역주행이며 '우물 안 개구리' 식의 발상이다.

요즘 세계 면세업계의 화두는 대형화, 다양화다. 우리의 경쟁국인 중국은 지난해 8월 하이난도에 7만2000㎡ 규모의 세계 최대 면세점을 열고 자국민 해외관광객의 수요를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은 관광산업 진흥을 위해 2만개의 미니면세점을 두겠다며 잰걸음이다.

세계적 면세점 업체들도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세계 2위였던 스위스 듀프리는 뉘앙스, 이탈리아 WDF를 인수해 미국 DFS를 제치고 1위에 등극했다. 면세점은 대형화할수록 유리한 사업이다. 물건을 직매입해 파는 사업이기 때문에 비용.재고 부담이 크고, 환율변동 등 외부 환경변화에 매우 민감한 고위험산업이다. 명품 브랜드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대형화는 필수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런 글로벌 트렌드를 간과한 채 국내 대형 면세점들의 독과점을 문제 삼는다.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이 국내 면세점시장의 82%를 점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면세점은 글로벌시장에서 경쟁하는 사업이다. 국내 점유율은 별 의미가 없다. 규제에 발목을 잡힌 롯데.신라가 어떻게 듀프리, DFS와 싸울 수 있겠는가.

면세점 매출의 80%를 외국인이 차지한다.
따라서 면세업은 내수산업이 아니라 적극 육성해야 할 수출산업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 사실을 잊고서 한가로운 특혜 논쟁이나 벌이고 있다.
우리 면세점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특허제를 등록제로 바꾸는 등 진입 규제를 혁파해야만 한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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