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fn논단] 소송비용담보제도 활성화해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1.11 17:04

수정 2015.11.11 17:04

[fn논단] 소송비용담보제도 활성화해야

최근 필자의 자문회사를 상대로 이른바 블랙컨슈머로 보이는 고객으로부터 '주장 자체로 말이 되지 않는' 소송이 제기되었다. 물론 상대방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필자의 의견으로는 자문회사가 승소할 것이 아주, 그리고 매우 분명해 보였다. 이에 따라 필자는 자문회사를 대리해 우선 위 소송에 대해 민사소송법상의 소송비용담보제공 신청을 해보기로 하였다. 소송비용담보제공 신청이란 원고가 대한민국에 주소.사무소와 영업소를 두지 아니한 때 또는 원고의 소장.준비서면 그 밖의 소송기록에 의해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한 때 등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제공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피고의 신청 내지 법원 직권에 의해 원고에게, 원고의 패소 확정 시 피고에게 지급해야 할 변호사비용 등을 포함한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를 제공하도록 명하는 제도이다.

법원의 기각결과가 예상됨에도 위 신청을 해보았으나 역시 결과는 기각이었다. 현재 법원은 소송비용담보제공 규정을 원고가 대한민국에 주소.사무소와 영업소를 두지 아니한 때의 요건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적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송이 끝나고 상대방에게 소송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소송비용 확정결정이 나더라도 패소한 상대방이 무자력이면 해당 결정이 무용지물이 되는데, 미리 소송비용담보가 제공돼 있으면 소송 종료 후 그 담보대금을 집행하면 되므로 소송비용담보제도(Security for Costs)는 효용성이 있다 할 것이다.

필자는 영국 법정변호사 사무실에서 수습변호사로 일하며 법정변호사가 제시해 주는 몇 가지 사건에 대해 함께 논의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것은 법정변호사가 대리하고 있는 피고 측이 승소한 사건에서 항소심 이전의 단계로 패소한 원고로 하여금 피고 측 변호사비용 등을 포함한 소송비용을 담보하게 하는 명령, 즉 일종의 영미법상의 소송비용담보제도를 이용하여 법원에 담보제공을 신청하는 것이었다.

위 제도에 의하면 피고가 승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차후 원고가 소송비용을 지급하지 못할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경우, 그것도 원고의 승소 개연성이 더 낮을수록 소송담보비용이 더 높게 책정되는 형태이고, 원고가 자력이 없거나 악의적이고 말이 되지 않는 소송(vexatious litigation)에도 비용담보가 부과될 수 있다고 한다. 실체적 재판 외에 소송비용에 대한 재판이 병행해서 이뤄지는 것이었다.
변호사비용이 상당히 높은 영미법 국가에서 소송을 당하게 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지출한 소송비용을 차후 담보받게 되므로 상당히 유용해 보였다.

위 영미법상의 담보제공 이유와 유사하게 우리 법원행정처도 승소 목적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수단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원고 주장 자체에 이유가 없으면서 소송비용 회수 가능성이 희박한 경우 등을 소송비용담보제공의 예시로 들고 있으나, 재판부의 원고 패소라는 예단이 노출되고 담보제공결정에 대한 불복 등 소송절차상의 번거로움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위 조문은 사문화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합리한 남소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넘쳐나는 소송 내지 상소 건수에 시달리는 법원으로서는 현존하는 소송비용담보제공 조문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 운영하면 어떨까 한다.

이성우 법무법인 중정 변호사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