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 우리는 모두 냄비 속 개구리인가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1.12 17:06

수정 2015.11.12 17:06

[데스크 칼럼] 우리는 모두 냄비 속 개구리인가

600년 긴 잠을 깬 '거인'이 마침내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옆집'은 물론 한참 떨어진 '서쪽 동네'까지 온통 시끌벅적하다. 수천년간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며 인류 문명을 맨 앞에서 이끌던 중국의 요즘 얘기다. 1400년대 이후 헤게모니를 서양에 내주며 끝없는 쇠락의 길을 걸었던 중국이었다. 그러나 '도광양회(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기다린다)'라는 말로 절치부심하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이제 '대국굴기(대국이 일어서다)'를 당당히 외치며 주변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 그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좌충우돌을 하고 있다.
일본을 제치고 G2(미국·중국)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것은 물론이고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군사·외교력으로 팽팽한 힘 겨루기가 한창이다.

요즘 중국을 보면 참으로 무섭다. 얼마 전 가슴을 '쿵' 하고 때리는 뉴스가 터졌다. "중국이 국내 반도체 인력 빼가기에 본격 나섰다"는 내용으로 중국이 우리나라 산업의 마지막 보루인 반도체산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 국민까지는 몰라도 경제신문의 데스크로서는 우려를 떠나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중국은 지난해 6월 '국가집적회로(IC)발전추진요강'을 발표하며 21조원을 쏟아붓겠다고 한 이후 막대한 자본력을 동원해 외국 반도체회사 인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에는 세계 4위 낸드플래시 메모리업체인 샌디스크 인수에 성공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세계 3위 메모리반도체 업체인 미국의 마이크론을 230억달러(약 26조원)에 인수하려다 기술유출을 염려한 미국 정부에 의해 무산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중국의 왕성한 식욕은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한국에서 밖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중국에서 뿌리칠 수 없는 엄청난 조건을 제시하는데…. 가족들 얼굴을 생각하면 고민을 할 이유가 없죠. 애국심만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얼마 전 함께 자리했던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의 말에선 이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지 않았다.

중국은 앞서 디스플레이산업 육성을 위해 2003년 초 어려움에 처한 한국 업체 하이디스의 인력을 대거 수입했었다. 이를 통해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기업이자 세계 6위의 액정표시장치(LCD) 제조업체 BOE를 육성해냈다. "당시 중국으로 건너온 인력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어요. 거의가 구조조정을 당했습니다." BOE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한 국내 경영자의 말이다. 수년간 국내 기술력을 모조리 흡수하면서 이제 더 이상 국내 인력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기술수준이 올라왔다는 것이다. 실제 BOE, CSOT 등 중국 대표기업들은 매년 29%의 성장률을 보이며 연평균 5.9%의 성장률에 그치는 국내 기업들을 바짝 뒤쫓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2년 일본을 넘어선 이후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호령하고 있지만 이제 이 같은 입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우리의 주력산업인 조선, 철강, 가전, 통신기기 등은 중국이 대등한 위치에 올랐거나 일부는 앞서고 있다. 자동차산업에서도 이미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으며 앞으로 대세를 이루게 될 전기차 부문에서는 벌써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그런 중국이 이제 우리나라의 마지막 보루인 반도체산업에까지 손을 댄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이렇듯 밖에서는 커다란 불길이 일고 있는데도 국내로 시선을 돌려보면 '냄비 속 개구리'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산적한 경제법안을 제쳐두고 '역사교과서 논쟁'에 몰두하는 정치권이나 이에 현혹돼 좌우로 흔들리는 국민들이나 세상물정 모르기는 모두 똑같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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