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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트로이 목마'와 이슬람 난민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1.20 17:39

수정 2015.11.20 17:39

[월드리포트] '트로이 목마'와 이슬람 난민


[월드리포트] '트로이 목마'와 이슬람 난민

'트로이 목마'를 아는가.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에서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받아 스파르타의 아름다운 헬레네 왕비를 꼬드겨 트로이로 데려온다. 졸지에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는 형인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에게 원정군을 요청하고 아가멤논은 그리스 대군을 이끌고 트로이로 향한다. 그리스군은 10년 동안 트로이를 포위한 채 수차례 공격했지만 성문을 여는 데 실패한다.

전쟁이 10년째 되던 해에 그리스 최고 지략가인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성을 외부에서는 무너뜨릴 수 없음을 알고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 성 안으로 들여보낸다. 성 안으로 들여보내진 목마 속에 그리스 병사들이 숨어 있었고 밤이 되자 트로이인들이 잠든 사이 그리스 병사들은 목마에서 나와 성문을 열고 트로이를 함락시킨다. 그리스군의 승리를 결정지은 것이 바로 '트로이 목마'다.


지난 13일 파리 테러 이후 현대판 '트로이 목마'라는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시리아 난민들이다.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유럽과 미국 등에 테러리스트들이 시리아 난민으로 위장 잠입해 테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공화당 유력 대선 경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최근 CNBC에 출연해 "우리는 이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이들이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도 있다"며 시리아 난민 1만명을 수용하겠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계획을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는 파리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강경대처를 주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실제로 파리 테러 사건에 연루된 용의자들 가운데 최소 1명(스타드 드 프랑스 축구장에서 자폭한 테러범 아흐메드 알무하마드 곁에서 시리아 여권 발견됨) 이상이 지난달 시리아 난민들 틈에 숨어 그리스로 들어온 뒤 파리로 숨어들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트로이 목마'가 현실화됐다는 공포가 미국을 엄습하고 있다.

특히 다음주 추수감사절과 블랙프라이데이라는 큰 연중행사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파리 테러를 벌인 IS가 다음 표적으로 워싱턴DC와 뉴욕을 거론하자 미국 전역이 '제2의 9.11 테러' 우려에 흔들리고 있다.

워싱턴DC에서 지난 18일 전례 없던 테러 대비 항공훈련이 시행되는가 하면 무슬림(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이유없는 반감이 혐오폭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50개주 가운데 31개주가 '난민보다 주민들의 안전이 우선'이라며 시리아 난민 수용을 거부했고,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다섯살짜리 시리아 난민 고아조차도 미국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 하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위협에도 공화당 의원들이 발의한 난민수용 금지 법안을 19일 가결했다. 찬성 289표, 반대 137표로 민주당도 47명이나 찬성했다. 이 법안이 상원에서 통과되고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미 의회는 3분의 2의 찬성으로 거부권을 무효로 할 수 있다.


미국이 시리아 난민 문제를 두고 이처럼 분열된 상황에서,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자폭한 테러범 곁에서 발견된 시리아 여권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독일 정부에 의해 제기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반난민 정서를 부추겨 유럽과 미국 등의 내부 분란을 조장하기 위해 IS가 고도의 이간책을 썼을지 모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독일 정부가 정확한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시리아 난민을 성급히 '트로이 목마'라는 이미지 안에 가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로스앤젤레스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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