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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중동 난민과 한국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1.23 16:57

수정 2015.11.23 21:59

[fn논단] 중동 난민과 한국

올해 1월 중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한 한류 아이돌 그룹이 팬미팅 행사를 가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말레이시아 10대 소녀들이 가벼운 포옹을 요구해 그룹 멤버들이 이들의 바람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 영상이 페이스북에 올라오자 말레이시아의 일부 이슬람 교도들은 한류 그룹이 이슬람 율법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며 비난했다. 그러나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약 3주 후 유럽 주재 한 한국대사관에 발신인을 밝히지 않은 정체불명의 편지가 도착했다. 이 편지는 한류 아이돌의 행동이 이슬람을 모독했다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대사관은 현지 경찰에 이 사실을 곧바로 알려 경계를 강화했고, 대사관 차원에서의 대책회의도 가졌으며 비상조치 등도 점검했다. 지난 2월 유럽 출장을 갔을 때 대사관 관계자로부터 이런 내용을 들었다. 지구촌 시대, 위성방송과 컴퓨터 클릭 하나로 전 세계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현재 우리에게도 테러가 먼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15일부터 이틀간 터키의 안탈리아에서 개최된 세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대테러 공조를 강화하겠다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회원국들은 이틀 전 파리를 피로 물들인 테러를 규탄하면서 프랑스에 대한 국제적 연대감을 표명하며 테러와의 싸움에서 협력을 약속했다. 테러 자금줄 차단, 정보 협력, 이민 협력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었다. 국제 경제협력의 최상위 포럼인 G20에서 테러 문제가 논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파리 테러가 회원국 모두에게도 발발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한 셈이다.

테러에 대한 국제적인 공조를 확인한 것은 경기부양책 이외에 이번 정상회의의 또 다른 성과다. 그렇지만 난민 관련 국제공조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유럽에만 몰리는 난민을 G20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분담하자는 이야기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난민은 글로벌 이슈로 회원국들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며, 국제개발협력과 연계가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표명되었다. 독일과 이탈리아 등 G20 회원국과 유럽연합(EU)은 미국에 더 많은 시리아 난민을 수용해 달라고 거듭 요청해 왔다. 그러나 진보적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조차 국내 정치적인 제한 때문에 이를 수용하기가 매우 어렵다. 공화당은 시리아 난민을 테러리스트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고 시리아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공화당 주지사가 16명이나 된다. 미국은 원래 올해 1500명 예정인 시리아 난민을 1만명 정도 받아들이겠다는 정도다.

우리도 경제적.도덕적인 이유로 더 많은 중동 난민의 수용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우리는 해마다 더 많은 외국인 근로자가 필요하다. 난민들은 보통 젊고 동기부여가 강하다.
난민을 적극 수용하는 국가 이미지는 우리의 중견국 브랜드에 매우 적합하다. 나중에 떠밀려 마지못해 난민을 받기보다 적절한 시기에 우리가 자발적으로 난민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보내는 게 더 효과적이다.
국제사회의 주요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해결에 앞장선다는 국가 이미지는 수천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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