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통신산업 새 정책이 급하다

오피니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1.25 14:58

수정 2015.11.25 14:58

1995년 쯤으로 기억한다. 초짜 기자로 막 입사했을 때다. 당시 정보통신부가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 정책을 발표했다. 국내에 27개 기간통신사업자를 무더기로 선정해 경쟁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책을 만든 정통부의 고위 공무원이 설명한 정책배경은 단호했다. 당시 국제무역기구(WTO) 시장개방 협상이 한창일 때였는데, WTO 요구사항보다 한 발 더 나간 개방정책을 발표하려는 것이었다.
시장개방에 앞서 국내에 통신회사를 여럿 만들어 국내에서 우수한 기업들이 가려지면, 이들은 국제 경쟁력도 갖춘 기업이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개방을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어린 기자였지만 그 설명을 듣고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5년 앞을 내다보면서 준비하는 정책을 만드는 구나" 하는 믿음에 가슴이 벅찼었다.

요즘 통신산업이 아우성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3개 통신회사의 올해 매출이 한꺼번에 줄어들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이 현실이 되고 있다. 국내에 통신서비스라는 시장이 만들어진지 30여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통신서비스의 발원지인 미국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최근 포춘은 미국 이동통신 회사들의 가입자당 매출이 '0'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신시장 축소가 현실이 되고 있고, 이는 조만간 해결될 일도 아니라는 말이다. 전국에 통신망을 깔아놓고 수백만명씩 가입자를 모아 매 월 사용료 수입으로 살아왔던 통신회사들의 사업구조 자체가 이제 노년기로 접어든 것이다.

우리나라 통신산업은 사실 정책이 이끌어 왔다. 80년대 국가정보화전략을 만들고, 90년대 CDMA 국가표준으로 이동전화 시장을 만들었다. 이 시장을 통해 국산 휴대폰 '애니콜'이 전통의 명가 모토로라를 넘어선게 지금이다. 참 바쁘게 달려왔다.

바쁜 걸음을 멈추고 잠깐 따져보자. 2015년 11월 25일 현재 대한민국의 통신정책은 뭘까?
1995년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 정책, 2000년 IMT-2000(현재의 3세대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2008년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정책....

우리나라에 통신시장이 형성되고 20년이상 통신산업은 연평균 30%씩의 성장을 거듭해 왔다. 당연히 정책은 경쟁을 활성화해서, 통신회사들의 이익을 소비자에게 돌리는 정책이 필요한 시기였다.

결국 한국 통신정책의 핵심은 '경쟁을 통한 소비자 후생 강화'였다.

시장이 달라졌다. 통신산업 자체가 축소되고 있다. 경쟁 활성화 정책은 축소되는 시장에 적용할 수 없다.

지금은 통신산업 활성화 정책이 필요한 때다. 창조경제 같은 거대한 경제 정책이 일제히 세계 최고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를 전제로 만들어지는게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이미 시장은 2~3년 전부터 신호를 보냈었다. 통신사업자들이 제살깎기 보조금 경쟁을 벌일 때 신호를 알아챘어야 했다. 장사꾼이 손해보는 것을 알면서도 가입자 숫자 메우기 영업을 할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문제를 알아채고, 통신산업 활성화 정책을 만들어 산업의 물꼬를 바꿔줬어야 했다.

이미 어린 기자 시절 가슴 벅찼던, 5년 뒤를 미리 준비하는 정책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그래도 다시 기대한다. 한국 통신산업의 전환을 이끌어낼 새로운 통신정책을....

아직 너무 늦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시가 급하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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