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

유로존 추가 양적완화의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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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상승률(인플레이션)이 낮은 수준에서 완고할 정도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유럽중앙은행(ECB)에 걱정거리이다. 그러나 ECB의 대응-그저 더 많은 양적완화(QE)-은 불균형 심화, 심각한 금융불안정이라는 반작용을 부를 수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제로 근처에 머물고 있고, 근원 인플레이션조차 ECB 목표치 2%에 훨씬 못미치는 1% 밑에서 움직이고 있다. 연초 상품가격 추가 하락세가 일부 원인이기는 하지만 장기 예상 인플레이션 역시 낮은 이유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장기 예상 인플레이션은 ECB가 매달 600억유로 규모에 이르는 대규모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시작한 3월 이후 거의 오르지 않고 있다.

ECB는 그러나 전략을 재검토하는 대신 베팅을 높이려 하고 있다. 더 많은 채권을 사들이고, 마이너스 상태인 기준금리를 더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는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다.

대출 조건 완화와 금리인하는 투자와 소비수요를 자극해 성장을 촉진할 것으로 생각들 한다. 그러나 독일, 네덜란드 같은 유로존 핵심부의 경우 이미 신용은 풍부하고, 금리는 한동안 제로 상태에 근접해 있어 채권 매입이 상당한 자극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최근 경제전망도 ECB 정책이 핵심부 국가들의 지출을 늘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은 실제로 대외수지 흑자가 늘고 있다.

물론 부채비율이 높은 주변부 국가들의 경우 추가 금리인하와 신용공급이 성장으로 이어질 여지는 있다. 또 지금까지 정부와 가계 지출을 늘리는 역할을 해왔다. 이론적으로는 ECB의 정책효과가 비대칭으로 나타나는 것은 적절(주변부의 실업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하지만 실제로는 간신히 파산을 면한 국가들로 지탱되는 회복은 지속불가능하다.

1986년 하이먼 민스키는 '폰지'-빚을 내지 않으면 빚을 갚을 수 없는-채무자가 경제의 주축이 되면 장기 금융안정성이 위협받는다고 경고한 바 있다. 제로금리 환경은 물론 이 같은 채무자들에게는 이상적이다. 변제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지표도 없기 때문에 채무자들은 그저 상환연장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는 채권자들에게는 악재다. 구매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저축을 더 늘리게 만든다.

민스키의 우려-지출을 하려는 이들은 돈을 꿀 수가 없고, 저축하는 이들은 지출하지 않는-에 대한 전형적인 대응은 통화정책이 물가안정에 집중하는 한편 부채비중이 높은 이들의 대출을 제한함으로써 금융안정성 안전판을 마련하는 거시안정성 정책을 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접근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거시안정성 정책이 한계 채무자들에 대한 추가 대출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면 (재무여건이 가장 양호한 주체들이 씀씀이를 늘리기를 거부하는 한) 통화정책의 수요 확대 효과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2001년 미국 경기침체 당시 이 문제가 빚어졌다.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오랫동안 저금리를 유지했지만 기업부문은 투자를 늘리지 않았다. 결국 소위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회복 땔감이 됐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메가 거품이었다.

유로존의 경우 회원국의 지출을 제한하는 '안정과 성장협약'이라는 핵심 거시안정성 정책으로 인해 통화정책의 무력감이 더 높아진다.

통화정책은 유로존 채권국과 채무국 간 불균형을 영속화시키고, 거시안정성 정책은 이를 막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금리가 정상수준으로 복귀하면 이는 심각한 금융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그리고 이게 풀기 어려운 숙제다-ECB는 재정상태가 나은 유로존 경제주체들의 수요를 자극하고, 따라서 회복을 지속하도록 할 방법이 거의 없다.

다음 행보를 결정하는 데 있어-채권 매입을 확대할지, 아니면 금리를 더 떨어뜨릴지, 이도 아니면 이 둘 모두를 택할지 어떨지 간에- ECB는 수요에 미치는 어떤 긍정적인 충격도 유로존 취약 국가들에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아마도 물가를 소폭 끌어올리는 것으로 정당화되지 못하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유로존의 회복은 이미 시작됐다. 지금은 회복이 길을 따라가도록 내버려둘 때다. 추가 통화 확대정책은 회복을 일부 강화시키는 대신 이미 위험수준인 유로존의 불균형을 높이는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대니얼 그로스 유럽정책연구원장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