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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의 살인적 순방일정

【 파리(프랑스)=조창원 기자】"박 대통령 정말 몸살인 거 맞아요?"

지난달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건강상 이유로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두고 여러 지인들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7박10일간의 다자회의 순방일정 이후 나흘 만에 영결식이 열렸기 때문에 충분히 순방으로 인한 피로를 풀 수 있다는 계산에 따라 나올 법한 질문이다.

고열 등 감기 증상에다 연이어 예정된 해외순방을 고려, 박 대통령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청와대의 해명이 신통치 않게 들릴 수도 있겠다.

청와대 설명대로 순방 강행군에 따른 과로인지 전 대통령의 영결식 참석을 원치 않아 부린 핑계인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다.

대통령 순방을 동행 취재하며 확인한 박 대통령의 외교일정 행보를 복기해 보면 이렇다.

지난달 14일 출국해 같은 달 23일 오전 귀국까지 총 7박10일간 다자회의 순방기간에 박 대통령의 일정은 여타 정상들과 마찬가지로 예정된 일정을 소화한 가운데 총 8회의 양자회담을 별도로 소화했다.

공식 일정 틈에 끼워 추진하다보니 약식으로 진행된 정상회담도 더러 있었다. 쏟아지는 공식 일정과 예정에 없던 박 대통령의 행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다보니 일부 회담은 아예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국익을 위해 주어진 시간을 십분 발휘했다고 볼 수 있으나 물리적 환경을 간과한 날림식 일정이라는 양극단의 평가에 직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의 불참으로 논란을 낳았던 김 전 대통령 영결식 이후 다시 나흘째인 지난달 29일 박 대통령은 파리와 체코로 순방을 떠났다.

그러나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일정 첫날인 지난달 30일 곤혹스러운 상황이 잇따라 터졌다. 이날 오후에 무려 4개 일정이 30분 간격으로 촘촘히 짜인 가운데 각 일정이 도미노처럼 연속 파행을 겪은 것이다.

오후 4시 예정 시간에 맞춰 청정에너지 혁신 미션 행사장에 도착한 박 대통령은 약 45분간 현장에서 선 자세로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다 다음 일정으로 이동했다.

행사의 주체 중 한 명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사정상 행사 시간보다 1시간5분여 늦게 도착한 탓에 박 대통령의 메인행사 참석은 불발됐다. 오후 5시15분께 예정돼 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한·러 정상회담장으로 달려간 박 대통령은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푸틴 대통령 역시 이전 일정들이 지연되면서 회담장에 늦게 나타난 것이다.

연이어 오후 6시10분 예정이던 파리 테러 추모일정과 6시30분부터 예정됐던 한국공예 패션디자인전 참석 시간도 줄줄이 밀리면서 오후 8시가 넘어 박 대통령의 하루 일정이 마무리됐다.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박 대통령의 빡빡한 순방 스케줄을 되새김질하면서 앞서 언급했던 과로와 몸살 논란을 다시 떠올려보자. 김 전 대통령 영결식 불참과 관련, 박 대통령은 청와대의 공식 발표처럼 실제로 과로와 몸살이었던 것인가, 아니면 과거 불편한 관계 탓에 참석을 원치 않아 내세운 구실인가.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파리 순방을 마치고 박 대통령은 곧바로 체코로 이동해 비셰그라드 그룹(체코·헝가리·폴란드·슬로바키아 등 중유럽 4개국의 지역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을 비롯해 이들 정상과 정상회담을 잇따라 갖는다. 공개되지 않은 추가 일정도 있다는 전언이다.


'외교의 현장은 국익을 위한 보이지 않는 전장'이라는 관점에서 우리는 또 다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촘촘한 순방일정을 놓고 국익을 위한 국가원수의 소임이라는 긍정론과 과욕 혹은 참모진의 의전 실패라는 비판론이 제기될 수 있다.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