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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의 소비자경제] 정치권의 '을' 지키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03 16:38

수정 2015.12.17 14:51

[이성구의 소비자경제] 정치권의 '을' 지키기

2년여 전 남양유업의 대리점에 대한 밀어내기 등 불공정 거래행위와 본사 직원의 막말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을지로(乙을 지키는 길)위원회를 구성해 각종 대책을 강구했고, 야권뿐만 아니라 여권까지 나서 국회에서는 5건(입법청원 포함)의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대리점법)' 제정안과 2건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대리점거래는 본사의 표지를 사용하고 일정 부분 본사의 통제를 받는 등 가맹사업거래(프랜차이즈)와 유사한 형태로 운영되면서도 가맹사업법에 의해 규제를 받는 프랜차이즈와 달리 별도의 법적 규제가 없어 새로운 입법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주무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는 현행 공정거래법 제23조의 불공정 거래행위 관련 조항으로도 법 집행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었고, 이로 인해 입법 과정에서 진통을 겪기는 했지만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통과된 법률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당초 제안된 법률안과 비교해 후퇴한 면은 있지만 대리점계약의 서면화, 분쟁조정협의회 설치, 3배 손해배상제 도입 등으로 대리점 사업자들의 권익 보호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게 됐다.

정무위가 다수의 대리점법 관련 안건을 심사해 하나의 대안으로 마련하는 과정에서 대리점 사업자 간 단체 결성이나 본사와의 공동 협약체결, 피해 구제를 위한 집단소송제, 대리점계약 기간의 보장이나 계약해지 제한 등의 내용은 제외됨으로써 결과적으로 통과된 대리점법 내용은 현행 공정거래법상의 우월적 지위 남용 규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된 것인데 많은 경우 본사와 대리점 간의 갈등이 계약 해지 과정에서 발생한 점이나 그동안 공정거래위원회의 관련 심결이 명확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대리점계약 종료나 해지 문제에 관한 법적 보완이 필요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어쨌든 정치권의 '을 지키기'에 대한 관심과 열의는 여야 할 것 없이 상당하고, 갈등 속에서도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그런데 갑을관계 문제의 원인이기도 하고, 그 영향을 받기도 하는 소비자 문제에 대한 이해나 관심은 부족하다. 갑을관계 발생의 근원은 소비자에게 신뢰를 받는 브랜드나 유통채널이 많지 않은 데서 출발하고, 을을 과도하게 보호하는 경우 그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되기 일쑤다. 만일 대리점 사업자에게 일정 수익을 보장하거나 경쟁력 없는 대리점의 퇴출을 막아 을을 보호하려 한다면 그 비용은 소비자 혹은 을보다 못한 병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갑을관계의 을은 그나마 갑과 직접 거래할 기회조차 얻지도 못하는 병보다는 나은 위치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얼마 전 대법원 판결이 있었던 대형마트 영업제한 규제도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해 우리 경제의 갑을관계 문제를 해결하려 한 셈이지만 올바른 해결책이 될지 의문이다.

올바른 을 보호는 소비자가 제 목소리를 내는 환경에서 가능해진다.
그런데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소비자권익증진기금 설치를 규정한 소비자기본법 개정안은 1년 넘게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yisg@fnnews.com 이성구 fn소비자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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