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 걸음] 순진한 상상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09 17:04

수정 2015.12.09 17:04

[이구순의 느린 걸음] 순진한 상상

한 골목에 국밥집이 있었다. 장사가 꽤 잘 됐다. 바로 옆에 국밥집이 하나 더 생겼다. 당연히 손님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 원조 국밥집 주인장의 고민이 커졌다. 하나님께 매일 밤 기도를 했다.
살려달라고…. 드디어 하나님이 답을 하셨다. "무엇이든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다. 대신 그 소원의 두 배를 옆집 주인에게 줄 것이니 잘 판단해라!" 원조 국밥집 주인장은 장고 끝에 하나님께 소원을 말했다. "제 한 쪽 눈을 멀게 해 주십시오."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수익성은 갈수록 떨어지면서 기업들의 인심이 사나워지고 있다. 내년 초 이동통신 회사들을 대상으로 주파수 경매가 벌어진다. 경매를 준비하는 이동통신 회사 임원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자꾸 앞의 일화가 떠오른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3사가 일제히 "경쟁사의 비용이 최대한 많이 들어가도록 경매전략을 짜야 한다"고 목청을 돋운다.

경매라는 게 상대방의 비용은 많이 들이게 하고 내 비용은 줄이는 게 최상의 방법이라지만, 경쟁사의 비용을 많이 끌어내는 전략보다는 내 회사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우선적으로 세워야 하지 않을까.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 인수를 결정하고 정부의 심사를 받고 있다. KT와 LG유플러스는 일제히 이 인수합병(M&A)의 부당함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 발자국만 깊이 들여다보면 3사 모두가 곧 M&A든 결합상품이든 기존 통신산업 밖에서 생존의 활로를 찾아야 하는 기업들이다. 나머지 두 회사의 고위관계자들은 이번 M&A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는 것이 결국 부메랑으로 자기 회사로 돌아갈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M&A의 부당함을 주장하기보다는 그동안 이런 방식의 사업영역 확대를 가로막고 있던 규제들을 없애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현명한 대처방법 아닐까.

통신회사 임원들과 만나 주파수나 M&A에 대한 내 생각을 얘기하면 하나같이 말한다. "그 말이 맞기는 한데, 누구도 전체 경영전략회의에서 순간적으로 경쟁사에 유리할 것처럼 보이는 얘기를 꺼낼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되레 내게 "세상을 모르는 순진한 생각만 하고 있다"며 혀를 찬다.

앞에 말한 일화를 되새겨본다. 원조 국밥집 주인장이 "제 한쪽 눈을 멀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지 않고 "이 골목에 손님을 두 배로 보내주십시오"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두 국밥집 주인이 모두 몸 상하지 않고, 골목의 손님은 6배나 늘어 수입도 늘었을 것 아닌가. 결국 한쪽 눈을 잃고 원조 국밥집 주인장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원조 국밥집 주인장이 고민하게 된 근본적 문제는 손님이 줄었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돌아온 것은 손님은 그대로인 채 한쪽 눈만 잃은 것이다. 경쟁의 결과는 파이를 키워 경쟁자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계속 경쟁하는 것이다. 경쟁자를 상하게 해서 함께 피해를 보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전쟁이다.
통신회사들이 한꺼번에 '세상을 모르는 순진한 생각'을 하면 어떨까. 순진한 상상을 해본다.

cafe9@fnnews.com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