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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봄은 왔으나 즐길줄 모르니..

김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11 18:02

수정 2015.12.11 20:21

[여의도에서] 봄은 왔으나 즐길줄 모르니..

오늘은 12월 12일이다. 35년 전 오늘 전두환의 신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시절을 어떻게 살았나 싶다. 그의 독재정권 7년은 정말이지 악몽보다 더했다. 지난 주말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얼마 전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 묘역을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묘역은 아직 단장 중이었다. 다음 달인 내년 1월 일반에 공개된단다. 그분 묘터가 어디에, 어떻게 잡혔는지 궁금해졌다. 장군묘역으로 올라가봤다. 그랬더니 조금은 볼 수 있었다. 단장 중인 그의 묘역은 햇살을 받아서인지 환한 광채가 보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도 찾아 참배했다. 한강이 여기로 굽이치고 있었다. 이곳으로 국기(國氣)가 흘러들고 있음 직했다. 다시 아래 묘역으로 향했다.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면에 든 곳이다. 역대 왕릉에 비할 때 참 소박하게 단장된 조그마한 묘역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카랑카랑한 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듯했다.

"난 말해요. 아르헨티나의 알폰신 대통령같이, 군인이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 그런 '시집살이 대통령'은 절대로 않는다는 것을, 난 분명히 말해요"라고 말하자 청중들은 "옳소"라고 화답하며 유세장은 이내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1987년 대선 때 DJ가 행한 유세의 한 대목이다. 당시 집권당 노태우 후보와 김영삼·김대중·김종필 3김이 모두 대선에 출마했었다. 그때 DJ는 그렇게 밝혔다. 그는 노 후보를 군부의 앞잡이, 또는 그 연장선으로 봤다. 그는 당시 우리의 처지를 아르헨티나에 비유했다. 아르헨티나는 1970년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대국이었다. 그러나 산업다각화의 실패로 악독한 독재의 늪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우리보다 한 발 앞서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문민화에 성공했다. 그 대통령이 알폰신이다.

DJ는 알폰신의 처지를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자신이 집권했을 때 장차 신군부의 동향이 어떨지를 예단한 것이다. 따라서 그 처방책을 유권자에게 일러주고 호소했으나 당시 대선에서 그들(YS·DJ)은 단일화 실패로 집권에 실패했다. 이후 5년 뒤에 집권한 YS는 제일 먼저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는 등 군정(軍政)을 완전 종식시켰다. YS와 DJ는 '문민(文民)의 치(治)'를 다져놓은 대통령이다. 두 분은 이제 이 땅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됐다.

그분들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는 아직도 황량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막장드라마만 연출되고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정치판을 봐도 그렇고, 노동판을 봐도 그렇다. 지난달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씨는 불법·폭력집회를 주도한 혐의 등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조계사로 숨어버렸었다. 한씨는 그곳에서 25일째 공권력을 우롱한 뒤 지금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과연 국민들은 한씨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노동운동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과연 바람직한 행동이었는지 심히 궁금하다. 경찰은 한씨에 대해 소요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YS가 집권했던 1996년 이맘때 일이다. 국회에서 노동자에게 불리한 노동법이 날치기로 통과됐다.
그러나 당시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은 합법적 집회를 통해 노동자 권익을 보장받았다. 민주와 독재라는 이분법적 사회구조가 YS와 DJ라는 걸출한 전직 대통령들에 의해 무너지고 다원화된 지 오래됐다.
그런데도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우리 사회를 재단하는 낙후된 의식과 행동이 여전한 현실이 안타깝다. 민주화 시대, 법치주의 시대에 걸맞은 노동운동, 정치운동은 아직 요원한 것일까.

dikim@fnnews.com 김두일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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