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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에 듣는다] 대전환기 맞은 미국 통화정책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11 18:02

수정 2015.12.11 18:02

[세계 석학에 듣는다] 대전환기 맞은 미국 통화정책

세계 금융위기 발발 이후 확산된 괴상하고 소설 같은 경제 독트린 가운데 선두주자는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 존 테일러가 내놓은 것이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위기 이후 미국·유럽·일본의 경제정책은 장기금리를 제한하는 것으로 임대료 규제가 주택 임대시장에서 집주인들의 임대 공급을 감소시키는 것과 거의 같다. 테일러는 저금리와 양적완화(QE), 선제 안내가 "이용 가능한 신용을 줄임으로써 총수요를 감퇴시키고, 이는 실업을 끌어올리는 경향이 있어 전형적인 원치않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테일러의 유추는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부터 잘못됐다. 임대료 규제가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임차인과 지주 모두에 이익이 되는 거래를 금지하기 때문이다. 정부 기관이 임대료 상한을 정하면 지주는 규정 이상의 임대료를 설정할 수 없다.
이는 시장을 왜곡하고, 더 높은 가격이었다면 지주들이 기꺼이 임대했을 아파트들을 비어있게 만들고, 임차인들이 기꺼이 지불하려는 수준의 임대료 제안을 막는다.

테일러가 비판하는 경제정책에서는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같은 메커니즘이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중앙은행이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장기금리를 떨어뜨린다고 해서 잠재적 임대인들이 더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줄 기회를 막지는 않는다. 또 임차인들이 이 같은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을 막는 것도 아니다. 이 같은 거래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임차인들은 자유롭게 그런 시장에 진입하지 않기로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테일러는 어떻게 이 같은 유추에 도달한 것일까. 그의 사유가 자유시장에 대한 그의 믿음에 경도된 게 그 이유일 것이다. 테일러, 또 그와 견해를 같이 하는 이들은 아마도 현 금리 수준이 너무 낮다는 생각을 출발점으로 하는 것 같다. 자유시장은 실패할 수 없다(오직 실패될 수만 있다)는 그들의 신념에 따라 그들은 부자연스러운 저금리 뒤에는 반드시 특정 정부 정책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가정에 도달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이제 목표는 이처럼 금리를 왜곡한 정부의 대응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된다. 정부 대응이 적절할 수 있다는 어떤 주장도 '붉은 청어' 같은 모순이기 때문에 임대료 규제 가설이 가능한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다.

내 직관이 옳다면 테일러와 그 무리들은 자신들이 틀렸다는 점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어려운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받아들이려면 시장이 불완전하고 실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기꺼이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에겐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5년 전 테일러와 그의 지적 동지들은 '벤 버냉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당시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던 그의 QE 계획은 "통화 가치 하락과 물가상승(인플레이션)" 위험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측이 대대적인 오류로 드러났음에도 테일러와 그의 동지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재고하거나 아마도 버냉키가 통화정책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지 못했다. 대신 테일러는 또 다른 이론(임대료 규제 가설)으로 옮겨 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하는 일은 늘 잘못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유일하면서도 가능한 대응은 논리와 증거를 들이대는 것이다. 실제 경제 여건을 감안한 유럽과 미국의 통화정책은 지나치게 느슨하지 않다. 굳이 꼽자면 지나치게 긴축적이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자연' 금리(왈라스의 일반균형 방정식 체계에서 추론할 수 있는)는 실제로 현 통화정책에 따른 금리보다 낮다. 물론 경제의 관성적인 예상이 통화정책과 결합해 금리와 물가상승률을 왜곡해 왔지만 테일러가 제안하는 것과 같은 방향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현 경제상황에 비춰) 필요한 수준 또는 자유시장이나 유연한 가격 체계를 가진 경제가 적절한 균형에 도달했을 경우 나타나게 될 수준보다 금리는 너무 높고, 인플레이션은 너무 낮다.

현재 금리는 정말 뭔가 잘못됐다.
왜 그처럼 낮은 금리가 경제에 필요하고, 얼마나 지속돼야 적당할지는 깊고도 해결되지 못한 질문이다. 이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올리비에 블랑샤드가 경제학의 '어두운 모퉁이들'로 지적한, 지금까지 연구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은 영역이다.
테일러와 그의 일족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금리가 잘못된 이유가 중앙은행이 추진한 정책과는 거의 관련이 없으며, 오로지 정책 담당자들이 직면한 상황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브래드포드 디롱 美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경제학 교수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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