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나는 대한민국 ○○○입니다] (20) 삶이 팍팍한 중산층 "집 한 채 있다고 중산층? 대출금에 미래 저당잡힌 빈곤층"

조윤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14 17:49

수정 2015.12.14 21:53

월 374만원 벌면 중산층 현실은 500만원은 벌어야 여유로운 삶 누릴 수 있어
맞벌이 부부 소득 많지만 노후준비에 아이는 포기
[나는 대한민국 ○○○입니다] (20) 삶이 팍팍한 중산층 "집 한 채 있다고 중산층? 대출금에 미래 저당잡힌 빈곤층"
#.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인 S사의 부장급인 김모씨(44)에게 중산층의 삶을 듣고 싶다고 하자 쓴웃음이 돌아왔다. "남들은 나 정도면 중산층 이상이라고 하는데 삶은 왜 이리 팍팍한 거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서울 명문대를 졸업한 뒤 바로 S사에 입사한 대한민국 대표 '엘리트'다. 서울 중심가에 132㎡(40평)대 아파트를 소유하고 중형차를 몰고다니는 김씨는 우리나라 중산층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102㎡(31평) 집 한 채, 중형차, 자녀 둘, 취미생활 하나 이상….' 최근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내놓은 대한민국 중산층의 모습이다.

더욱 자세하게는, 우리나라 중산층은 월평균 수입 374만원에 순자산은 2억3000만원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승용차로 출근해 6200원가량의 점심을 먹고 하루에 약 8.2시간을 근무한다. 운동은 일주일에 평균 1.2회, 취미활동은 월 1.3회다.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은 '가정의 안녕'(40%)과 일상의 즐거움(31.6%)이지만 정작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하루 1.7시간에 불과하다. 최고의 정신적 가치는 믿음과 신뢰(39.8%), 자기애(31.6%)다.

그러나 이 같은 수준의 삶을 영위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중산층이라는 말에 의문을 표시하는 이들이 생각 외로 많다.

이번 조사에서도 중산층 10명 중 8명이 '나는 빈곤층이다'라고 답해 충격을 안겨줬다. 이들은 왜 중산층이라는 말에 손사레를 칠까.

관련기사 고개 숙인 외벌이 가장 "입 늘었는데 지갑은 더 얄팍" 국회의원 보좌진 "차기 의원자리 노리냐고요? 비정규직 신세나 면하면 다행이죠"
■매달 돌아오는 대출금 '한숨'

남들보다 앞서간다고 생각했다. 시골 출신이 국내 최고 대학에 떡하니 붙었을 때는 동네어귀에 플래카드도 붙었다. 그뿐인가 졸업과 동시에 S사에 입사하며 부모님과 가족을 넘어 동네의 자랑거리였다.

3년 연애를 거친 뒤 결혼도 순조로웠다. 은행에 다니던 아내가 격무에 힘들어하는 모습에, 첫 아이를 임신하자 호기롭게 '그만두라'고 권했다. 둘째가 생기고 첫 아이가 열 살이 되자 아이교육을 위해 서울 목동으로 이사를 했다.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넌 참 걱정이 없겠다"라며 부러워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아내와 노후에 대해 얘기를 할 때마다 가슴이 턱턱 막히는 듯하다. 시골에 농사 짓는 부모님, 80대에 건강하신 것만 해도 그게 어딘가 싶지만, 대학 입학 때부터 지금까지 돈 걱정 없이 살아본 적이 없다.

좀 무리를 해서 마련한 아파트 대출금은 매달 150만원씩 앞으로 10년 가까이 내야 한다. 내 나이 40대 중반.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할지도 모르겠다. 임원 승진은 하늘의 별 따기이고, 임원이 못되면 앞으로 길어야 5년이다. 애들 교육비에 결혼까지 시키려면 노후준비는 먼 나라 얘기다. 앞서 말한 김씨의 하소연이다.

중산층은 중간 정도의 소득을 가진 이들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인 중위소득 50~150%에 해당하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일컫는다. 소득기준으로 잡힌 우리나라 중산층은 4인가구 기준으로 월소득 187만~563만원.

그러나 국민들이 체감하는 중산층 기준은 이와 다르다. 시쳇말로 빚 없이 서울시내 99㎡(30평)대 이상 아파트를 보유하고 월급여 500만원 이상, 2000㏄급 중형차 보유, 예금잔액 1억원 이상, 해외여행 1년에 한 차례 이상 정도는 돼야 중산층으로 인정한다.

'중산층=여유로움'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려면 정부 기준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지만 노후에도 중산층에 계속 남아 있기란 쉽지 않다. NH투자증권의 '대한민국 중산층 보고서'를 봐도 현재 중산층 10명 중 4명은 노후에 월소득 100만원 미만의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조사대상의 48.7%가 노후준비를 안하고 있는 데다 30.1%는 준비된 노후자산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아이는 패스"

소득 기준으로 보면 맞벌이는 대부분 중산층에 포함된다. 그러나 자녀 양육 등으로 한 사람이 직장을 포기하는 순간, 중산층에서 밀려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젊은 부부들 사이에는 아이 없이 사는 삶, 즉 딩크(DINK)를 선택하는 이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딩크는 'Double Income, No Kids' 약자로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갖지 않고 맞벌이를 하는 젊은 부부를 말한다.

초등학교 교사 정모씨(37)는 3년 전 결혼을 하며 부인과 딩크(DINK)를 약속했다. 아내는 공공기관 계약직 공무원으로, 둘이 벌어 한 달 수입이 4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지방에 사는 데다 결혼 당시 양가 부모님이 보태준 탓에 주택자금은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차도 큰맘 먹고 얼마 전에 외제차로 뽑았다. 여행이 취미인 둘은 매달 주말이나 연차 등으로 전국 곳곳을 다니고, 휴가철에는 길게는 2주씩 해외로 나간다.

자신이 중산층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정씨는 "아이는 가질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본인이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면서 자녀 양육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체험한 데다 지금과 같은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노후준비였다. 정씨 부부가 한 달에 노후를 위해 모으는 돈은 100만원 남짓. 많진 않지만 꾸준히 모은다면 두 사람의 노후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정씨는 "아이가 있으면 지금과 같은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다. 아내도 언젠가는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데 노후는 어떻게 준비하느냐"며 "양가 어른들은 이기적이라고 나중에 후회한다고 혼을 내지만 좋은 음식 먹고 1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하면서 여유롭게 살고싶다"고 말했다.

결혼 전에는 살짝 망설였던 아내 이모씨(33)도 동감했다.
이씨는 "조카를 키우는 친정 언니들을 보면 지금의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다"며 "애를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 것 모두가 돈이다. 돈 없이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세상이다.
아쉽긴 하지만 애 없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털어놨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fnSurvey